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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민병문> 사닥다리 통해 본 유신체제 추억
장하준 교수의 사닥다리 차기
유신 때 산업보호정책과 닮아
폭력국가의 앙금은 세월이 약
방만해진 지금 새 리더십을


올해는 유신체제 발효 40돌이다. 지난 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 당시 제3공화국 대통령이 돌연 헌정 질서의 중단과 유신헌법을 발표, 국가의 초법적 권한과 1인 영구집권을 위한 국가 폭력 불사를 제도화시킨 것이다. 명분이야 한민족 5000년 역사의 빈곤 타파와 안보 강화였다. 당시만 해도 보릿고개 아사자와 먹여주기만 하는 식모가 존재하고 북한 김신조 특공대가 청와대 타격을 목표로 침입하는 등 살벌했다.

유신체제 평가는 제각각이나 공통분모가 있다. 인권 없는 폭력국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한 안보 강화, 경제적 발전이다. 사회 질서를 잡아 문화 수준을 제고, 한류 붐의 토양을 조성한 것은 덤이다. 저항은 철저한 응징으로 싹을 잘랐다. 대통령 긴급 조치를 연속적으로 발표,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수경사들이 사정없이 잡아들였다. 요즘 인혁당 사건이 재론되는 이유다. 대법원 사형 판결 다음 날 집행한 것은 누가 봐도 너무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게 당연하지만 엄밀히 보아 아버지 책임을 딸에게 묻는 격이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발전 면에서 괄목할 성과는 부인할 수 없다. 우선 80년까지 목표 삼았던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이 77년에 조기 달성된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궤도에 오르자 그때까지 가공ㆍ조립 무역에 목을 맸던 기업들이 중후산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 경제 체질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철저한 산업보호와 국가지원이 이뤄낸 사닥다리 효과다.

부자 되는 간단한 방법은 부자 아버지를 갖는 것이라고 현인이 말했지만, 한국은 오랜 역사 가운데 부자 아버지는 거의 없고 그나마 있어도 제 식구, 제 가문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판을 유신체제가 뒤엎었다. 오늘날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돌파에다 올림픽 5위 국가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18대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박근혜가 탐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선진국 유치산업 보호 옹호와 사닥다리 걷어차기 이론은 바로 유신체제를 통해 산업화를 이룬 우리의 모델 케이스가 아닌가.

반면 민주당도 장 교수가 광주(光州) 명문가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아들로서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에 반대하고 경제민주화를 뒷받침하는 주장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장재식 씨는 필자가 올챙이 기자 시절 개청 초기 국세청에 드나들 때 머리 좋은 바둑 고수의 국장급 간부였다. 온화하면서도 이론적인 그는 개청 초기 국세청의 행정과 세무정책을 정립하는 데 기여가 컸던 분이다.

장 교수는 성장론자이면서도 글로벌리즘에 찬성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상품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대가 넘는다’는 속설을 무시해선 안 된다. 2차세계대전 이후 70년간의 평화는 세계화의 산물이고 우리는 더 혜택을 많이 받았다. 최근 한국이 무디스와 피치 양대 국제신용평가회사로부터 상향 등급을 받고 특히 일본을 앞선 배경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장 교수의 사닥다리를, 아니 처음 이 말을 쓴 프레데릭 리스트의 유치산업보호론을 어찌 평가해야 할지 생각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의 긴급조치가 무수히 인권 탄압을 가져왔지만, 국가 위급 시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긴급조치를 통해 수천명을 국가 배신과 반역죄로 투옥, 후방 안전을 꾀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공화를 위한 소수 희생을 어느 시기까지 안타까워해야 하는가는 정말 규명하기 힘든 철학적 과제다. 그리스와 로마와 중국의 만리장성을 가본 뒤 느낌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신체제의 국가폭력 아래 안보와 경제발전, 사회질서도 향상됐다는 점이다. 시간이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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