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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영국의 E. H. 카는 고전이 된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갈파했다. 역사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사실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됐을 때 의미를 지닌다는 얘기다.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시대적 좌표를 설정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인식은 곧 현재의 문제다.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세우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방 후에는 식민통치의 사상적 토대가 됐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사관을 새롭게 정립해 자주독립 국가의 좌표를 세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하에서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12ㆍ12사태’는 신군부에 의한 쿠데타로, ‘5ㆍ18 광주사태’는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 1974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판명돼 관련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도 역사 바로세우기의 성과였다. 그만큼 역사는 살아서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박정희 정권과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견해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좌표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도자의 역사인식은 곧 시대적 과제와 실천 방안을 만드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와 올바른 대화를 할 줄 아는 지도자가 올바른 미래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해준 선임기자/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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