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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는 은폐 의혹'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헤럴드경제=고재영 인턴기자]“해수 주입으로 원자로를 폐기하게 되는 것이 아깝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2호기 원자로를 긴급히 냉각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전한 도쿄전력 간부의 해당 발언이 알려져 일본인들이 분개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지난 6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대책회의 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도쿄전력 본사 간부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소장 등이 모여 지난해 3월13일 밤 진행한 회의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도쿄전력의 모 간부는 “발전소 측에서 원자로를 해수로 냉각하겠다고 했다는데”라는 말로 후쿠시마 발전소의 원자로 냉각 결정에 의문을 드러내며 “본사(도쿄전력)의 생각은, 갑자기 해수를 주입하면 원자로를 폐기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되도록이면 일단 버티면서 ‘담수 공급’을 기다린다는 선택지도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냐는 것”이라고 물었다.

이에 요시다 마사오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장은 “현재 공급할 수 있는 담수는 없다. 시간이 늦어진다”고 강조하며 “원자로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담수로 냉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요시다 소장은 냉각수가 다량으로 필요한 때에 담수를 고집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원자로는 해수로 냉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던 것.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단호한 입장에 도쿄전력 간부는 “현재 상황은 이해했다”며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으나, 그 이후에도 “아무래도 원자로를 폐기하기에는 아깝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고 말했다. “도쿄전력이 해수 주입을 망설였다”는 의혹 제기에 지난 6월 사측이 공표한 최종 보고에서 “대책 본부를 중심으로 사고 수습을 위한 대응을 하고 있었다”는 반박과는 전면 배치된 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자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도쿄전력 측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공분하고 있다.

일본 시사통신은 지난 8일 “해수 주입 ‘아깝다’…도쿄전력 본사, 원자로 폐기를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제의 발언을 전하며 “도쿄전력 본사는 원자로가 해수의 염분으로 부식되어 폐기하게 되는 것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방사능 피해가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안일한 대응을 한 도쿄전력을 비판한 것.

일본 국민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사태를 악화시킨 도쿄전력에 대한 분노는 원색적인 비난은 물론 책임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원자로가 아깝다고 말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잖아? 본사는 태평했던 건가?”라고 반문하며 도쿄전력 측의 대응을 문제삼는가 하면 “그런 말을 하고 앉아있으니까 피해가 확대됐다”, “그런 중요한 때에 아깝다는 말이 나올까... 상식을 벗어나도 정도가 있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또 “도쿄전력을 일각이라도 빨리 해체해야 한다”거나 “원전 사고는 인재(人災)다. 도쿄전력 간부는 감옥에 가야한다”는 반응은 물론 도쿄전력 간부들에 대한 법적ㆍ행정적 조치를 촉구하고, 배상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원전사고 이후 각종 은폐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도쿄전력 측이 6일 공개한 해당 영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총 150시간 분량이지만, 그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시간 분량의 영상에 음성이 남아있지 않다.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로 도쿄전력 관계자들의 얼굴이 지워져 있으며, 음성이 남아있는 50시간의 영상을 제외한 나머지 100시간의 영상에서는 “삐” 소리만 들린다. 이에 일본의 마이니치신문, 제이캐스트뉴스, 주간금요일 등 다수의 언론은 7일 보도를 통해 “전대 미문의 위기적 상황임에도 불구, 반 이상의 영상에 음성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다”며 도쿄전력의 거듭된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칸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지난 8일 일본기자클럽의 강연에서 “항공기 사고로 말하면, 파일럿과 관제탑의 교환이 회의 영상의 내용이다.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내 목소리만 없는 것도 부자연스럽다”고 비판했다.

JYKO42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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