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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수영·승마 만능 스포츠맨 푸틴…농구 마니아 오바마…독일 축구팀 열성팬 메르켈…美스포츠 야구 좋아하는 반미주의자 차베스
바야흐로 지덕(知德)은 물론 체(體), 즉 ‘몸’까지 갖춘 3박자 리더십이 통하는 시대다. 취미를 넘어 마니아 수준인 세계 정상들의 별난 스포츠 사랑도 이런 대중의 수요와 맞닿아 있다. 이들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정치의 연장이다. 스포츠를 통해 대중에게 건강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전하는가 하면, 상대방과의 벽을 허무는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실무에까지 접목하고 있다. 남다른 스포츠 애호가인 세계 정상들의 스포츠정치학을 들여다본다.

▶웃통 벗기는 예사… 몸짱 과시형=나이 60에도 군살 없는 몸매로 남성미를 뽐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가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상반신이나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말을 타는 모습은 카메라에 자주 포착돼 전 세계 여성은 물론 게이 커뮤니티까지 열광시켰다.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의 그는 선수 경력까지 있는 유도 유단자다. 지금은 평소 체육관 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ㆍ스키 등을 즐기는 전천후 스포츠광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골프광에 가깝다. 대통령 취임 이후 해마다 30회 정도 골프 라운드를 하며 총 100회 라운드를 넘길 정도다. 그는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로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때에도 골프를 즐겨 구설에 올랐다. 당연히 정적들에겐 좋은 공격 소재다. 그의 지나친 골프 사랑을 두고 공화당은 ‘골프대장’이라며 공격한다. 골프가 우리나라에선 귀족 스포츠이지만 미국에서는 대중 스포츠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골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골프 외에 농구ㆍ웨이트 트레이닝 등 평소 운동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부드러운 얼굴과 딴판인 근육질의 반전 몸매가 언론에 공개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체통을 무릅쓰고 오바마와 푸틴이 과감히 웃옷을 벗고 운동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데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의 절제되고 부지런한 생활철학과 위기 극복의 강인한 정신력을 대중에 어필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오바마가 대통령 당선 직후 언론에 근육질 몸매를 공개하면서 매관매직 스캔들의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와 관련된 의혹을 잠재우는 효과를 봤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편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시절 홍보용으로 웃옷을 벗은 채 카누를 타는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으나 나중에 뱃살을 지워 날씬하게 보이게끔 조작 처리된 것으로 알려져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관람애호형=축구에 목매는 유럽 대륙의 지도자들이 이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축구광으로 유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선수의 흐르는 땀방울까지 잡아낸다는 3차원(3D) 초고화질 TV 등 첨단 기술의 발달도 그녀의 현장 사랑을 막을 순 없나 보다.

지난달 23일 유럽의 축구잔치인 ‘유로 2012 대회’의 독일과 그리스 간 8강전.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그녀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이날 유럽 언론들은 앞다퉈 메르켈의 경기장 참석 소식을 전하면서 유럽의 물주 독일과 구제금융 대상국으로 반독(反獨) 여론이 들끓는 그리스 간 경기 결과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경기에서 그녀는 독일 선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벌떡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만세를 외치는가 하면, 독일이 그리스를 대파하자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등 축구광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애초 그녀의 일정에는 이날 저녁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3개국 정상과의 역내 재정위기 대책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독일-그리스전 경기일정이 겹치자 그녀는 정상회담 시간을 조정해 경기장을 찾았다는 후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2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을 보기 위해 케이프타운까지 날아갔다.

2010년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 2012’ 독일-터키 경기 땐 독일팀 라커룸까지 찾아 상반신을 벗은 선수들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가 전차군단 독일 축구의 승리 현장에서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대중에 각인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서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도 구제금융 요청계획 발표를 재무장관에게 맡기고 자신은 스페인-이탈리아전 축구 관전을 위해 폴란드로 떠나 지나친 축구 사랑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론무장형에 선수 출신 정상도 다수=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치는 이론무장형이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토론토 메이플스의 오랜 서포터로, 아이스하키 책을 집필하고 스포츠 서적을 갖춰놓은 개인 서재가 있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해발 2500m 이상 고지대 경기를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을 직접 찾아 철회를 이끌어냈고, 자국 2부 리그 공식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반미 성향과 달리 미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야구 선수 출신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야구애호가이며, 이명박 대통령도 남다른 테니스 사랑으로 유명하다. 아소 다로 일본 전 총리는 클레이 사격 선수 출신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요트 선수로 1972년 뮌헨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조깅광’,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전 총리는 ‘산악자전거광’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화 기자>
/betty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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