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치러진 미얀마 보궐선거에서 야당인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며 수도 양곤의 빈민층 지역 카우무에 출마, 80% 이상의 득표율로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인고의 세월’이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 8일, 독재정권에 맞서 대학생들이 일으킨 이른바 ‘8888항쟁’에서 군부의 총탄에 맞아 쓰러져 가는 민간인을 목격한 뒤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다.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것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영웅’ 아웅산 장군의 막내딸이라는 ‘혈통’만으로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군부는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정치활동을 펴는 수치 여사를 1989년, 처음으로 집에 가뒀다.
그럼에도 그가 이듬해 창당한 NLD는 총선에서 총 485석 가운데 392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군부는 선거를 무효화하고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다. 대신 수치 여사를 총 15년간 세 차례나 가택연금했다. 영국 옥스포드대 정치학과 재학시절 만나 결혼한 영국인 마이클 아리스 교수가 1999년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수치 여사는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군부가 수치 여사의 영국 방문을 허용했지만, 한 번 마얀마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직감해 이에 응하지 않아서다.
수치 여사와 미얀마에 찾아온 봄은 미얀마 국민과 서방국가를 두루 들뜨게만들고 있다. 양곤시에 있는 NLD 선거본부 앞엔 수많은 군중이 모여 “우리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꿈꿔왔다”며 NLD측 선거 캠페인송에 맞춰 춤을 췄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미얀마의 민주화 실험이 성공 단계에 접어듦에 따라 1990년 이후 미얀마에 가해왔던 각종 제재조치를 확 거둘 것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수치 여사의 승리는 미얀마 내부 개혁의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그가 이끄는 NLD는 총 45석이 걸린 이번 보궐선거에서 최소한 41석, 최대로는 전 지역구 승리가 점쳐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현지시간) “야당이 주장하는 44석 혹은 전승 예상은 집권당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NLD의 압승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번 선거의 공식 결과는 일주일 뒤께 나온다고 AFP 등 외신은 전했다.
수치 여사와 미얀마의 앞 날에 걸림돌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우선 수치 여사의 건강이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려스럽다. 개혁을 주도 중인 현 테인 세인 대통령의 몸 상태도 문제다. 수치 여사는 지난달 25일 과로 탓에 유세 일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살인적인 지원유세를 펼친 탓이다. 최근 몇 달새 두 번이나 병상에 의지했다.
수치 여사와 동갑내기이자, 개혁안 입법을 위해선 수치 여사와 손을 잡아야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세인 대통령은 심장병 치료를 위해 최근 싱가포르를 다녀오기도 했다. 영국 유력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세인 대통령과 수치 여사의 건강이 혹시 잘못되면 개혁조치를 수행할 충분한 모멘텀이 유지될지 불분명하다”며 “군부의 보수세력이 시간을 되돌리려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번 선거에서 미얀마 북부의 보석 광산도시 카친에선 막대한 부를 군부와 그 친족들이 장악하며 공정 선거를 방해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는 제도권 정치판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수치 여사에게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잠재워 국민적 통합의 단계로 미얀마를 이끌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홍성원 기자@sw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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