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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떠나 나를 찾아가는 작가, 서도호
세계 미술계 관심 1순위 英 테이트모던·日 도쿄도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영구 전시…반투명 천으로 지은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 환상적
성북동 한옥·뉴욕 스튜디오·베를린집…
한국적 정체성, 외국의 집과 충돌·적응

미국집 안에 별똥별처럼 떨어진 한옥
두 채의 집이 하나의 존재로
무한반복되는 인연·윤회 개념도 함축

딸 얻고 다루고 싶은 테마 더 많아져
‘어머니의 음식’ 새 프로젝트 도전


런던 템스 강변에는 ‘테이트 모던’이라는 거대한 미술관이 있다. 이 현대미술관은 매년 전 세계에서 약 400만명이 찾는다. 하지만 테이트 모던은 철저히 서구지향의 미술관이다. 아시아 등 기타 지역 미술은 구색으로만 소개할 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한국의 서도호 작가가 이 미술관의 너른 방을 차지했다. 주홍빛 노방(얇은 비단)으로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듯한 계단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독립된 방을 고즈넉히 채우고 있다. 때문에 왁자지껄한 여타 전시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서도호는 “관람객들이 제 방에만 오면 갑자기 차분해진다네요. 명상적이란 말을 많이 듣죠”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테이트 모던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다.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MOT+)에도 그의 ‘투영’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한옥의 솟을 대문을 푸른 헝겊으로 섬세하게 형상화한 이 작품 또한 반응이 매우 좋다. MOT측은 이 작품을 6개월간 설치하려다가 1년 넘게 연장 전시 중이다. 두 미술관처럼 서도호의 작품은 세계 요소요소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영국과 일본에서는 그의 인기가 대단하다. 

유학시절 머물던 뉴욕의 타운하우스를 5분의 1로 축소해 그 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집 내부와 무수한 기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제작한 작품 ‘별똥별’과 함께 한 서도호 작가.
 [사진=삼성미술관 Leeum]

▶서도호를 키운 8할은 전통한옥?= 서도호는 ‘예술 테러리스트’였던 고(故)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를 뛰는 한국의 여러 작가 중 단연 돋보인다. 서울대 미대및 대학원, 로드아일랜드대와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한 이래 지난 10여년간 서도호의 활동은 눈부시다. 굴지의 미술관과 비엔날레 조직위가 그를 잡기 위해 분주하다.

지금껏 서도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이다. 때문에 그는 ‘집을 갖고 다니는 작가’로 불린다. 그 집은 섬세하게 손바느질로 ‘지은’ 집이다. 한지처럼 반투명한 천의 은은한 겹침과 손바느질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서도호의 집에 주목하게 하는 요소다.

서도호의 유소년기(1970~80년대)는 한국의 근대화가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 단연 양옥이 대세였다.

“초등학교 시절 여의도 아파트가 최고의 선망이었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서세옥 화백)는 오히려 창덕궁 ‘연경당’을 성북동 집에 그대로 옮겨 지으셨어요. 구한 말 마지막 도편수와 몇 년에 걸쳐 힘들게요.”

서도호는 부모님과 함께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됐던 연경당을 처음 찾았던 봄날을 잊지 못한다. 마침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한다. “그 공기 지금도 코끝을 스치는 듯 해요. 그 후로도 몇 차례 연경당을 더 찾았고, 아버지가 고재(궁궐을 허물어 나온 목재)를 구해 연경당의 사랑채를 지극 정성 짓는 과정을 수년간 지켜봤죠. 또 뜨락의 오래 된 소나무, 풀 한포기, 석물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가꾸고 꾸미는 부모님을 보며 저절로 자긍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곤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새 세상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은 바로 그 한옥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서도호의 작품세계는 집을 떠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에게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자,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주적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소재로서의 집이 아닌 것이다.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그 독특한 개념=그는 ‘집 속의 집’이라는 새로운 관계항도 만들었다. 미국집 안에 한옥을 넣는가 하면 미국집에 한옥이 별똥별처럼 날아가 꽝 하고 부딪히게도 했다. 최근 작업 중엔 뉴잉글랜드의 집 중앙에 한옥이 안착해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 작업의 개념은 연경당과 신기하리만치 맞닿아 있다. 순조가 창덕궁에 지은 연경당은 사실 양반가의 집을 그대로 본따 지은 것이다. 궁궐 속에 사대부의 집을 옮겨온 것. 그 개념을 아버지는 양옥 일색이었던 성북동에 고스란히 옮겨왔고, 아들인 자신은 아버지가 지었던 한옥을 얇은 헝겊으로 지었다. 그리곤 최근에는 서양집 속 중앙에 한옥을 집어넣는 작업도 했다. 공간의 재맥락화가 이뤄지며 순조가 시행했던 것이 부친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기묘한 전이인 셈이다.

또 집 속의 집이라는 개념은 ‘인연과 윤회’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나와 타자, 현세와 내세, 개인과 우주의 만남을 보여 주는 ‘집 속에 놓인 집’이라는 상황은 작가의 카르마 (Karma, 업)와 같은 집적 조각이 보여 주는 관계와 윤회의 개념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집과 옷에서 앞으론 삶의 전반을 아우를터=서도호는 2010년 결혼했다.

“지난해 1월에 딸이 태어났어요. 지금 14개월이에요. 그 아이를 보면 인간은 많은 걸 갖고 태어나는 듯해요. 자신만의 개성 같은 것이요.”

분신이 태어나는 바람에 그는 다루고 싶은 테마가 더 늘어났다.

올해와 내년에도 그의 일정은 대단히 빠듯하다. 그중에서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주립대학의 7층짜리 건물 끝자락에 진짜 집과 정원을 짓는 작업은 특히 흥미롭다. 8월에는 일본 히로시마미술관, 11월에는 가나자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9월의 광주비엔날레와 덕수궁 내 함녕전 프로젝트도 잡혀있다.

서도호는 지금까지 의식주 중 주(住)와 의(衣)를 다뤘는데, 식(食)에도 도전한다. 해외생활 중 늘 그리웠던 어머니의 음식을 따라 배우는 요리 프로젝트 등 그가 꿈꾸는 새 프로젝트는 보다 온기 있고 보다 유연하다. 그러나 문화인류적, 문화사적 소통과 전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필시 서도호다운 작업이 될 듯하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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