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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이은형> 그는 왜 기자회견을 했을까
의혹은 오히려 증폭되고
본인 신뢰만 추락시킨격
블랙코미디에 국민은 씁쓸
진실 밝히고 대가 치러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관련 이영호 전 청와대비서관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평소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고 이 분야 강의도 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 칼럼 소재로 삼게 됐다. 나는 이 전 비서관을 전혀 모른다. 그에 대해 가진 몇 가지 정보는 신문 기사를 통해 알려진 것이 전부다. 이름이나 얼굴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그의 이름과 얼굴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또 그가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중책을 지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이나 의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니어서 좀 더 들여다보게 됐다.

첫째,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은 민간인 불법사찰의 윗선 개입 의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줄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적절하지 못한 행동, 말투, 어휘 선택, 감정 노출 등으로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다. 소리를 지르고, 울먹이고, 심지어 바닥에 넘어지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대중은 회견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예전 기사까지 찾아보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둘째, 그가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설득력이 떨어지고 공감대 형성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의 말투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동어반복이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명백히, 명백히 밝히는….” “결코, 결코….” “어떠한 책임도 지겠습니다, 지겠습니다.” “저는 ‘몸통’입니다, ‘몸통’입니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거나, 사실을 왜곡 또는 과장할 때 사람들은 부사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반복하게 된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서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설득력, 공감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기자회견을 보면서 ‘몸통임을 주장하는 깃털’이라는 심증이 더욱 강해졌다.

셋째,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을 서슴없이 쏟아냄으로써 자신에 대한 신뢰성을 한껏 추락시켰다. 자신은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는 내용이 뭔지도 모르면서 ‘철저히, 철저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자신과는 아무런 공식적 연관성이 없는 조직에 지시를 내린 데 대해 떳떳하게 인정했다.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는 선의로 2000만원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거인멸이나 증인을 회유하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왜 했을까?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 윗선 개입 의혹은 더욱 큰 관심을 끌게 됐고, 그는 깃털이며 그 위에 몸통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혀줬으며, 나아가 그에 대한 신뢰도는 확실하게 추락했다. 추락할 만큼의 신뢰도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도 건지지 못한 채 블랙코미디만 연출한 셈이 됐다.

씁쓸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다가 평소 강의에서 강조하던 간단한 원칙 하나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사실을 말한다.’ 조직을 이끌다 보면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긴다. 하지만 입장이 난처해서, 말하기 불편해서, 그리고 누군가 어려워질 것이 두려워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결국 사실보다 더 나쁜 루머가 돈다. 그리고 끝까지 비밀을 지키기도 어렵다. 나중에 사실을 이야기해도 떨어진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렵다. 만약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자들이 이 같은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면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진실을 밝히고 잘못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나마 털끝만큼의 체면이라도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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