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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렉터 피정환씨 "딸아이 피아노 사줄 돈으로 그림을..."
피정환(56. 신동시장 대표)씨 부부는 화랑가에서 ‘꽤나 부지런한 미남미녀 아트컬렉터’로 손꼽힌다. 굵직굵직한 미술 기획전과 미술품 경매는 빠짐없이 훑는데다, 미술강좌도 열심히 수강하기 때문이다. 그가 약 25년간 모은 작품 중 한국화 거장들의 회화를 모아 소장품전을 꾸몄다.

오는 4월 1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12층) 롯데갤러리에서 열리는 ‘꿈을 품은 화가들-한국미의 재발견’이 바로 화제의 전시. 이 전시에는 운보 김기창(1913∼2001), 내고 박생광(1904∼1985),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작품 37점이 내걸렸다. 모두 피 대표 부부의 소장품이다.

지금이야 한국 미술계를 부지런히 누비는 잘 알려진 미술 애호가이지만 피정환 대표의 원래 꿈은 배우였다. 고교와 대학시절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해 극장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하루는 존 보이트와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죤 슬레진저 감독의 ‘미드나잇 카우보이’라는 영화를 보러 중앙극장에 갔는데 영화제작자가 다가왔다.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의 배우를 찾고 있다. 해보지 않겠느냐”며 요즘말로 치면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그런데 그 제작자가 “기왕이면 성형수술을 살짝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말에 그는 곧바로 그만 뒀다. 배우를 희망했으나 얼굴에 칼까지 대고 싶진 않았다. 사실 자신의 연기력이 신통치 않음을 애진작에 간파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매력적인지라, 프로듀서나 감독을 꿈꾸며 전공(경제학)은 뒷전인채, 열심히 극장을 찾고 관련서적을 읽었다. 그러다가 부친이 갖게 계시던 신길동 땅에 시장을 짓는 일을 하게 됐다. ‘벌집’을 헐고 번듯한 현대식 시장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계약을 맺었던 건설업자가 자금을 몽땅 챙겨 줄행랑을 쳤다. 그 바람에 그는 극심한 불안증이 생겨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북촌의 병원을 다니던 피 대표는 정신과에 접수를 해놓고, 무작정 기다리는 게 싫어 인사동 화랑가를 순례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어느새 미술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그 때부터 미술서적과 화집을 열심히 사모았다. 그는 한가지에 매료되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성격이다. 그렇게 모은 미술자료가 지금은 7000여점에 이른다. 작고 소박한 그림도 한두점 사봤다.

그러다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을 사면서 본격적인 미술품 컬렉션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후론 돈만 생겼다 하면 그림을 샀다. 여섯살짜리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려고 모았던 돈도 그림을 사는데 써버렸고, 낡은 자동차를 바꾸기 위해 들었던 적금도 깼다. 아내와는 자연히 다투게 됐다.


초창기 그는 동양화에 특별히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활달한 해학이 특징인 김기창의 작품과 화려한 전통오방색으로 한국적 샤머니즘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박생광, 문자추상을 비롯해 다양한 조형실험을 거듭한 이응노의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그들의 작품 중 한국적 색채와 서정이 살아있는 그림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한번은 인사동 표구점을 지나는데 운보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감정서도 없었지만 ‘찌르르’하고 전율이 오더라고요. 오로지 제 눈과 감(感)만 믿고 샀죠. 나중에 운보의 아드님(김완 씨)을 만나 작품을 보여드렸더니 청주 작업실에서 도둑맞은 12점 가운데 하나라고 하더군요. 장물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으니 안심하라는 말과 함께요”. 운보의 회화 ‘바구니 여인’(1960년대)을 가리키며 피 대표가 들려준 말이다.

이 후로 그는 서양화와 조각, 해외작가 작품으로 컬렉션의 지평을 넓혀갔다. 단 컬렉션 초기에 세웠던 ‘한달에 한점 씩,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만 산다’는 원칙은 요즘도 고수하고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그림을 사고, 구입한 작품은 여유를 갖고 찬찬히 음미하겠다는 것이다.

또 투자 개념보다는 마음에 와닿는 그림을 우선적으로 구입하는 편으로, 김홍주 남관 이명호 이우환 정광호 등의 회화 사진 조각을 수집했다. 외국작가 중에는 안토니 카로의 조각, 안젤름 키퍼의 회화, 마리노 마리니의 조각을 구입했다. 마크 로스코와 사이 톰블리 등의 회화도 무척 좋아하지만 여력이 닿지않아 그저 좋아만 할 뿐이다.



“한 10년간 아반떼를 타고 다녔어요. 더 좋은 차를 탈 수도 있었지만 ‘그 돈이면 좋은 그림을 하나라도 더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앞섰죠. 미술애호가들은 대체로 빠듯하게 살아요. 수중에 돈이 생기면 앞뒤 생각 않고, 점 찍었던 그림을 사니 말이죠. 저도 마찬가집니다”

다행인 것은 컬렉션 초기 미술에 경도된 남편을 못마땅해 했던 아내(송원경 씨) 또한 이제는 남편에 버금가는 미술팬이 돼 함께 전시장을 누빈다는 점이다.

자신의 소장품을 도심 한복판, 그것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다는 롯데백화점 내 롯데갤러리에 내건 피 대표는 "관람객들이 과연 제 수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사실 좀 걱정이 됩니다.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제겐 한점 한점이 제 자식같고, 컬렉션했을 당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행복합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미술품 수집가들은 피 대표처럼 전면에 나서는 걸 꺼린다.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컬렉션전을 여는 예도 흔치 않다. 아직까지 미술품 수집에 대한 일반의 시각이 다소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저야 뭐 용돈과 여윳돈 범위에서 25년여간 꾸준히 사모은 건데요. 아주 비싼 작품도 없고요”라고 말했다. 그가 수집한 한국화 중에는 20여년 세월이 지나 값이 오히려 떨어진 것도 적지않다. 서양그림에 비해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저 작품, 꼭 사고 싶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못 산 작품 가운데 20년새 값이 수십, 수백배 오른 것도 더러 있다. 이를테면 자코메티의 조각이라든가, 이우환 작가의 회화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그 뿐인지라 담담하다고 했다. 물론 그의 수집품 중에도 기대 이상으로 값이 오른 작품이 꽤 있다. 다른 취미를 갖지 않고, 열심히 미술관이며 화랑을 누비며 미술공부를 한 것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피 대표는 아트 컬렉션 또한 수집가의 안목을 드러낼 수 있으니 일종의 ’예술’이라고 믿는다. 그의 마지막 꿈은 수집품으로 작은 미술관을 건립하거나, 사회를 위해 유용하게 쓰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룰 때까지 피 대표는 아내의 손을 잡고, 열심히 미술계를 누빌 참이다. (02)726-442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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