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왕의 영혼이 말하는 조선의 비밀?
세종이 정종에게 한 말은? “왕이 아닌 기생군주요!”

성군 세종대왕의 모습은 두 가지였다. 따뜻함과 비정함이다. 아버지인 태종에게는 더 없는 효자 아들이었지만 큰아버지 정종에게는 씻을 수 없는 한을 심어놨다. 세종은 정종이 임금임을 부인했다. 조선은 건국군주인 태조에 이어 정종이 왕위에 올랐다. 정종에 이어 태종과 세종이 등극했다. 세종이 왕관을 썼을 때 정종과 태종은 생존해 있었다. 

정종과 태종은 형제사이다. 세종은 정종이 승하하자 의외의 결정을 한다. 조선의 임금은 3년상이 끝나면 종묘에 모셔진다. 이 때 후대왕은 승하한 선대왕에게 묘호를 같이 올린다. 태조, 세종, 성종, 영조와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세종은 큰아버지인 정종을 '기생군주'라며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군주와는 다르게 묘호없이 공정대왕으로만 불렸다.

외교문서에서도 정종의 존재를 부인

세종은 명나라에 보낸 국서에서도 정종을 임금이 아닌 '큰아버지(伯父)'로 표현하고, 행장에도 국왕이 아닌 '전 권서국사(前權署國事)'로 적었다. 권서국사는 임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내린 교서에서 '태종이 태조의 대통을 이어 유업을 계승했다'고 했다. 아예 큰아버지를 조선의 임금 역사에서 빼 버린 것이다. 이는 아버지 태종이 건국군주의 태종의 정치적 유업을 바로 계승했음을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은 신하들은 감성으로 사로잡았다. 종묘대제 때 실족하며 술잔을 떨어뜨린 제관 허조를 책망하는 대신 '종묘 정전의 계단을 넓히라'고 지시한다. 당시 세종은 29세였고, 허조는 57세였다. 세종은 따뜻한 감성으로 서른네 살이나 연상인 황희, 서른일곱 살이 많은 맹사성 등 노련한 원로 정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종, 종묘 리더십으로 노련한 재상들을 사로잡다

조선의 역사는 종묘의 역사이기도 했다. 종묘사직은 곧 나라를 일컬었다. 임금들의 영혼이 숨쉬는 종묘에서 일어난 정치와 에피소드를 다룬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다음생각. 2012)‘가 출간됐다. 저자는 종묘제례, 왕릉제향 전승자로 조선황실의례를 공부한 이상주씨다.

종묘는 정치의 현장이었다. 신하들은 임금 영조를 바보로 만드는 어설픈 공작을 하다 발각돼 된서리를 맞는다. 종묘제례에 쓸 희생소를 살피는 영조에게 모든 신하가 비루함에도 불구하고 살졌다고 거짓 고한 것이다.

영조, 신하들에 의해 바보가 되다

즉위 당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정조는 전무후무하게 측근 호위무사 없이 종묘제례를 모셔야 했다. 또 임금의 어가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병사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못한다. 그 한을 곱씹던 정조는 10년 후에야 훈련대장을 처벌한다.

효종은 청나라가 준 시호를 종묘에 적용하지 않으면서 북벌의지를 은밀하게 밝힌다. 그 뜻을 받든 영의정 이경여 가문에 구전돼온 북벌 비화도 읽을거리다.

조선 임금 모신 종묘에 웬 고려왕?

황제국의 정신, 명나라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태종의 호연지기도 종묘에 묻어있다. 종묘의 신령에 혼비백산한 왜군, 종묘의 제례에 쓸 동물을 음악속에 희생하는 의식, 임금이 싼 막걸리를 조상께 올리는 내용도 흥미롭다.

또 미스터리도 있다. 조선 왕실 사당에 고려왕인 공민왕이 모셔진 게 그 예다. 원명 교체기의 대륙 정세를 이용해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등 많은 개혁을 한 공민왕은 언제부터, 왜 조선군주들의 사당에 모셔졌을까.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어 더욱 신비로울 뿐이다.

종묘에 배향된 친일파 이완용 미스터리

친일파 이완용이 어떻게 신성한 종묘에 배향되었는가도 의문이다. 황제를 협박하고 나라를 일본에 넘긴 이완용은 상식적으로 절대 배향공신이 될 수 없었지만, 일제의 통치가 이미 너무나 많이 진행돼 반대할 인사가 없었다. 그 틈을 타 이완용의 신주는 은근슬쩍 종묘에 안치된다. 이 사건은 망국이 되어버린 조선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다.

도성에 불이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가 된 사연, 임금도 가지 못하는 길, 종(宗)보다 조(祖)로 호칭되기를 바라는 왕들의 염원, 종묘에서 반성문을 쓴 양녕대군, 한국에서 가장 긴 117자의 이름을 가진 임금, 종묘에서 쫓겨난 왕후들도 흥미를 더하는 이야기들이다.

종묘 21궁금증 풀이, 종묘 둘러보기도 잔잔한 재미

종묘에 관한 21가지 궁금증 풀이와 종묘를 전반적으로 안내하는 종묘 둘러보기도 스토리로 잘 구성돼 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 정신이 어우러진 '종묘'는 조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차별화 된 교양 역사서인 이 책을 통해 조선 시대의 전반을 쉽고도 새로운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데일리 제공]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