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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SO와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활이 부러질듯한 격정…그 고통 뒤엔 희열이…”
“어제는 헬싱키에 있었어요. 지금은 뉴욕이고요. 내일은 캐나다 토론토로 가요.”

듣기만 해도 숨가쁜 일정이다. 추운 날씨와는 상극인데, 추운 곳만 골라 연주 일정이 잡혔다며 애교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다가오는 28일에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LSO)와 함께 고국 팬들을 만난다. 한국도 춥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자 “선 비치(sunbeach)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라며 특유의 웃음을 짓는다. 뉴욕 연주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왔다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이다. 그와 전화 인터뷰를 한 날은 우연히도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과 애도 소식이 한창 전해지고 있던 때였다.

▶손가락 걱정하며 스케이트 안타는 아티스트 삶은 NO=“처음 휘트니 휴스턴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땐,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분이고 딸도 있다는데 슬펐죠” 평범한 애도 표시이려니 하던 순간 사라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기사를 읽다가 딱 한 단어에 눈이 갔어요. 휴스턴이 사망한 곳이 ‘호텔’이었다는 거죠. 월드스타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무대에 섰겠어요. 동시에 수많은 호텔에서 묵었겠죠. 죽는 순간까지 집이 아닌 호텔이었다는 점이 가슴 찡했어요.”

분야는 달라도 세계를 무대로 동분서주하는 아티스트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겠다는 듯 사라장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엔 친구들과 처음 스케이트를 타러 갔는데 무척 재밌었어요. 헬프, 머니볼, 디센던트 등 최근엔 영화도 자주 보러 다녔고요. 하루하루 아깝지 않게,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연주자인데 스케이트 타다가 손가락을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냐고 묻자 “매니저나 엄마가 제일 걱정하죠. 저는 별로 상관 안해요” 라며 털털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곳곳을 누비며 긴장된 연주 무대에 잇따라 서야 하지만 사라장은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힐러리 한, 재닌 얀센 등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 무대가 한국에서 잇따라 있을 예정이라고 말하자 사라장은 단박에 말을 이었다. “힐러리 한, 존경해요. 사람들은 라이벌이라고 말하는데 부지런히 연주활동 하는 솔리스트가 많지 않거든요. 4, 5명 정도죠. 각각 잘하는 레퍼토리나 스타일도 다르고요. 개인적으로 서로 잘 알지 못해도 솔리스트 연주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동지같아요.”


▶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와 리허설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만났을 때=LSO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란 별명을 지닌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끈다. 사라장은 게르기예프가 얼마나 바쁜 지휘자인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10분 미팅하는 것도 비행기 안에서 해야 할 정도에요. 리허설이 10시에서 1시까지 잡혀 있으면 12시 반에 나타나실 정도라니까요.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만큼 일정이 많은 분이죠.”

반면, 사라장은 리허설을 꼼꼼하게 챙기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번 고국 무대에서 선보일 작품은 연주하기 힘들기로 소문난 쇼스타고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3악장으로 구성된, 보통의 콘체르토와 달리 4악장으로 이뤄져 있어 곡 자체가 긴 데다가 힘과 기교가 많이 요구돼 연주자들 중에서는 공연 하루 전날 미리 리허설을 가질 만큼 체력 소모가 큰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라장은 이 길고 까다로운 곡마저도 리허설 당일 전곡을 소화한다. “연주자니까 당연한거죠”라고 말하는 행간에서 오랫동안 왕성하게 활동해 온 솔리스트의 숨은 비밀을 가늠할 수 있었다.

“2악장 연주가 끝나면 너무 힘들어서 무대에서 나가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3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이 분위기를 다잡아 주니까 괜찮아요. 4악장까지 연주하고나면 활이 나갈 정도로 팔이 아프지만 그만큼 희열이 있어요. 음악가여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에요” 리허설을 꼼꼼히 챙기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와 만나 무대를 꾸미지만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사라장은 지리하게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게르기예프의 스타일 때문에 오히려 본 무대가 매우 ‘익사이팅’하다고 했다. 그동안 팬들에게 브람스나 비발디 사계 같은 스탠더드한 곡들을 주로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쇼스타고비치를 연주하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쇼스타고비치의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작품이 러시아 음악이 특기인 게르기예프의 집중력있는 무대와 만나면 어떤 연주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황유진 기자@hyjsound>/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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