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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막 사흘,몰려드는 관객 "기괴한데 왜 이리 아름답죠?"
<이영란 기자의 아트 앤 아트>

반응이 뜨겁다. 마치 ‘이런 전시를 기다려왔다’는 듯한 분위기다.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53층의 모리미술관(Mori Art Museum)에서 지난 4일 개막한 한국작가 이불(48)의 대규모 개인전 ‘From me, belongs to You only(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에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쿄 ‘롯본기 아트트라이 앵글’의 심장부인 모리미술관은 연간 190만명이 찾는 유명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이불 전시는 일본 언론에 ‘압도적인 전시’로 보도되면서 벌써부터 관람열기가 뜨겁다. 모리미술관 가타오카 마미 수석큐레이터는 "삶과 죽음, 문명과 인간의 한계를 관통한 이불의 특별한 작업은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평단의 평도 좋다. 전시를 둘러본 엔리코 룽기 룩셈부르크현대미술관장은 "놀랍다. 이불은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줬다"고 했고, 미술평론가 고지마 야요이는 "눈으론 볼 수 없는 인간과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평했다. ’일본 현대미술계 대모’인 모리 여사는 "역대 모리의 전시 중 최고 수준이다. 20년을 일관되게 밀어부쳐온 작가의 창의력에 감탄했다"고 했다. 일본 오바야시건설의 대표이자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 컬렉터인 오바야시 다케오 회장은 "이불의 팬이었는데 이번 전시로 그를 더 열렬히 좋아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홍익대 조소과)졸업 후 ‘역사는 누가 만드는가’ ‘인간은 더 나아질 수 있는가’를 화두로, 지구촌 곳곳을 누벼온 끝에, 자신의 창작여정을 중간결산한 이불을 현지서 인터뷰했다.



-20년 궤적을 쏟아내느라 그런가? 몸이 퉁퉁 부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미술관이 좀 넓은가? 새벽까지 작업하며 단 것만 먹었더니 몸이 붓더라. 내 작업이 이렇게까지 다 모인 건 처음이다. 유럽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은 나도 참 오랫만에 보는 것들이다. 복잡한 작품이 많아 서울에서 함께 날아온 스튜디오 스텝 8명이 일주일을 밤낮없이 꼬박 매달렸다.

-모리 전관에 대표작들을 부려놓고 보니 어떤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게 사실 좀 두려웠지만 이렇게 모인 작업을 보니 나 자신에게 그렇게 부끄럽게 살진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인 내게도 참 소중한 기회였다. 게다가 그때 그때 지도 없이 마구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지도도 그려가며 작업했음도 알게 됐다.

-20년을 돌아보니 어떤 작업을 한 것같은가.
▶내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이슈 한가지, 어떤 것 한가지에 몰두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사회가 더없이 부조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나는 무얼 해야 하나, 무얼 바꿀 수 있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어떤 꿈을 꾸었나를 리서치하게 됐다. 처음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가득했고, 저항하려는 힘만 팽배했다. 레퍼런스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만든 사이보그 같은 걸 보면서 비로소 느끼고 안다. 레퍼런스가 좀 축적된 듯하다.


-초기작업을 오랜만에 다시 보는 심경은?
▶내가 많은 걸 고민하고 스타디했더라. 거울방(제3섹션)은 내 스스로도 야심찬 게 보인다.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음이 느껴진다. 강렬한 질문들이 담겼더라. 내 작업의 쉐도우(그림자)랄까? 쉐도우를 벗겨낸 풍경이 얼마나 조악할까 걱정했는데 열심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아, 며칠 지나면 바뀔진 모르겠으나 지금은 만족한다.

-작업들은 거대 서사를 다뤘는데 타이틀은 매우 시적이고, 개인적이다
▶어떤 타이틀을 달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자꾸 설명을 하면 미궁 속으로 더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러다 한 글귀가 떠올랐다. 몇년 전 끝모를 우울함에 빠져있을 때 연인이 ’이것은 오로지 너와 나에게 속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따뜻함, 사랑스런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을 관객 한명 한명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달았다.

-모리가 자국 작가를 제외하곤 아시아 작가에겐 별반 문호를 열지 않았는데..
▶난조 후미오 관장이 "작가로서 경력의 반환점을 돌았으니 지금이 중간결산전의 적절한 시기다"고 했다. 또 일본은 쓰나미 이후 인간의 오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무너진 이상향을 다룬 내 작업이 이슈가 되는 듯하다.

-전시를 본 전문가들이 뭐라 하던가?
▶지난해 큰 시련을 겪은 일본 평론가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업들이라고 하더라. 인간의 오만에 대해, 이상향을 꿈꾸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질문도 많이 받았을텐데
▶대지진, 세계 경제위기같은 시점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매우 무거운 질문이더라. 그걸 모색하는 흔적들이 내 작업이다고 했다. 아직 일말의 희망적인 대답을 못찾았지만 그 질문을 계속하겠다고 답했다.


-이젠 분노하지 않는가?
▶바꿀 수 없다 해도 분노해야 한다. 실망과 좌절을 하더라도 말이다. 산다는 게 꼭 행복해야 하고, 늘 비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출구가 없고,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지 않은가?

-백두산 천지를 다룬 작업을 비롯해 반사기법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거대한 욕조 위에 천지를 만들고, 검은 잉크를 담아 천정에 조각을 샹들리에처럼 매달았다. 천지에 조각이 비춰지도록 한 것이다. 삶에는, 그리고 인간에겐 여러 단면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저런 단면이 서로 부딪히고 조응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반짝이는 시퀸, 크리스탈, 거울을 왜 많이 쓰는가.
▶연좌제 때문에 부모가 직장을 잡지 못했다. 어머니가 구슬(시퀸)을 꿰는 가내수공업을 하며 생계를 해결했다. 나의 컬러감각은 어린 시절 구슬들을 보며 길러졌다. 반짝이는 비즈들은 소비와 사치로만 쓰인다. 그런데 나는 반짝이는 것들의 뒷면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난 소재에 매달리진 않는다. 소재는 주제를 위해 쓰여지는 도구일 뿐이다.

-강아지를 표현한 신작 ’비밀 공유자’에 대해 말해달라.
▶그림방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창밖을 자주 보는데, 나와 16년을 함께 해온 앞마당의 늙은 황구가 서울을 바라보다가 먹은 걸 토하더라. 그게 참 착잡하고 애틋했다. 그 개를 2년 전 떠나보냈다. 나의 30~40대를 함께 했는데, 그 시기를 정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센티멘탈한 시선을 거두고,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그 의미를 확장시켜 표현한 작업이다.
-일본인 관객들은 그 작품을 보고 ‘처연함의 미학’이 보인다고 하더라.
▶그럴 수도 있겠다. 강아지 입에서 토하는 게 나오니까. 크리스탈 월드라고 세계가 몰락하는 소설이 있더라. 그 소설을 차용해 강아지에 연결시켰다.

-이불에겐 ‘미술은 00다’에 무얼 넣고 싶나?
▶뭐라 답하든 내 발등을 찍는 게 될 거다. 그런데 예술이 목표는 아니다. 무얼 추구하다가 나온 것이지, 예술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앞으론 어디로 갈 것인가?
▶음, ’내일에 대해선 절대로 미리 고민하지 말자’가 내 신념인데.. 이번 전시를 마무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새 계획표를 만들어놓았더라. 새로 하고 싶은 작업 두가지를 ‘턱’하니 벽에 붙여놓았던 거다. 으이고, 난 정말 못말린다. 

<사진제공= 모리미술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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