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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세상의 편견을 거부하다
천편일률적 아파트 대신

작더라도 나에게 맞는집 제시

집이란 무엇인가 생각케해

공간배치·설계·공사비 등

실질적인 정보도 가득



집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집은 아파트와 동일시됐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게 생의 목표였다. 여기에 방향을 튼 게 전세비용 정도로 작은 집을 지은 ‘두 남자의 집짓기’ 이야기. 땅콩주택에 대한 관심이 들끓으면서 작은 집에 대한 욕구와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집 대신 작더라도 나에게 맞는 집, 비로소 사람들은 ‘집이란 무엇인가’ 묻게 된 것이다. 집과 그 속에 사는 사람, 행복의 삼각함수를 보여주는 임형남-노은주 건축가 부부의 ‘작은 집 큰 생각’(교보문고), 6평부터 시작하는 행복한 집짓기 150가지를 소개한 ‘일본.의 땅콩.집.’(마티),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을 제시한 건축가 김성홍의 ‘길모퉁이 건축’(현암사) 등 세 권이 이번주 나란히 나왔다.


도쿄 골목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일본의 작은 단독주택들을 소개한 ‘일본.의 땅콩.집’은 무엇보다 작은 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실제 사례를 제공함으로써 갈증을 풀어준다. 특히 도쿄의 좁은 땅을 효과적으로 활용,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면서 편리하고 예쁜 집들의 얘기는 시선을 확 끈다.

가령 대지면적 11.9평, 건축면적 6.35평의 손바닥만 한 땅에 부부와 두 자녀, 어머니까지 3세대가 함께 사는 집을 짓는다면? 건축가는 이 문제를 한 층에 하나의 방을 두는 설계로 푼다. 발코니와 계단의 난간 구성 등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며 구석구석 수납할 수 있는 건축가의 세심함이 놀랍다.

이 책의 미덕은 집짓기에 적당하지 않은 비정형의 땅, 깃대 모양 부지 등 땅의 약점을 극복하고 만족스러운 집을 만들어낸 데 있다. 또 설계부터 공간을 나누고 배치하는 방법, 집의 방향과 층고, 창에 대한 궁금증, 주요 시공법, 공사비 마련 등 실제적인 정보가 쏠쏠하다.

자연을 집 안으로, 집에서 바깥으로 연결된 소박한 집 이야기 ‘작은 집 큰 생각’은 부부 건축가가 결혼해서 살았던 집들과 설계를 맡아 지은 집 이야기로 나뉜다.

저자의 집 철학은 명료하다. 집은 세상의 편견과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담은 집이다.

저자가 살았던 집들의 얘기는 마치 대한민국 집의 순례처럼 보인다. 1960년대 초 나름 유행대로 지은 통의동 벽돌집, 70년대 말 집장사들이 대충 지어놓은 북한산 자락의 직사각형의 콤팩트 집, 80년대 대단지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중간 지점에서 탄생한 연립주택, 창문 아래 하얀 타일이 붙은 주교동의 개량한옥 등 한국 현대주거사를 망라하고 있다.

저자의 작은 집에 대한 철학은 크기가 작다기보다 적절한 집을 뜻한다. 소박하고 적당한 집, 본연의 의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 지으려 할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기준을 자기에게 두라고 말한다. 남의 시선이나 체면 등에 휘둘릴수록 거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집’이란 정말 크기가 작은 집이라기보다 ‘적절한 집’입니다. 즉 집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로 돌아간 소박한 집, 적당한 집, 본연의 집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거품을 뺀 집, 환경을 생각하는 집,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을 의미합니다. ”‘(작은 집 큰 생각’ 중)                                                                                              [사진제공=마티]

건축가 김성홍의 우리 건축을 생각하는 목소리는 절박하다. ‘낮은 도시 작은 건축’을 지향하는 저자가 주목하는 건 5층 이하 건물들, 즉 상점 건물이다. 전국 650만개 건물 중 97.5%를 차지하는 건축이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젊은 건축가들이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간건축에 도시의 얼굴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저자는 “주거와 상업, 문화가 공존하며 인간과 삶이 살아 숨 쉬는 길모퉁이 중간건축이 살아나야 우리 도시의 문화가 다양하고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길, 첫사랑을 기다리던 길모퉁이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 삶과 문화의 켜들이 깎여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몇몇 화려한 대로변을 지나면 영락없이 마주치는 칙칙한 도시 건물의 맨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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