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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사안 주민투표, 정치사안으로 변질... 나쁜 선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될 경우, 식물시장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사퇴를 연계하면서 정책대결이 정치적 대결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혈세를 적절하게 배분하면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질 좋은 학교급식을 제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취지는 무색해지고, 급식문제가 정책이 아닌 여야간 이전투구의 정치소재가 됐다는 지적이다.

주민투표의 본질은 정책결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주민투표 대상을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으로서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주민투표는 선거로 뽑은 대표자의 신임여부를 결정짓는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에서 지면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주민투표 결과와 시장직을 연계하면서 ‘주요 정책에 대해 주민의 의사를 묻도록 한’ 법률의 취지와는 달리 정치적 신임투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앞으로 주민투표를 발의하는 단체장은 그 결과를 자신의 신임과 연계시켜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다.

오 시장의 투표결과와 시장직 연계에 대해 한나라당조차도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종구 서울시당 위원장은 22일 “오 시장이 복지 담론에 대한 본인의 입장과 철학을 확실하게 밝힌 것”이라면서도 “당은 전반적으로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거는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걸 필요가 있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허광태(민주당)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정이야 엉망진창이 되든 말든 서울시민이 불안에 떨든 말든 오로지 투표율을 올려서 자신만 살고 보겠다는 못된 심산”이라며 “시장직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이번 주민투표가 참가전(戰)과 거부전 양상으로 굳어지면서, 유권자들이 투표에 부쳐진 안(案) 중 하나를 선택해 정책대안을 찾으려는 본래 기능에서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 시장이 패배해 시장직에서 물러난다면 시정공백을 메우기 위해 올해 10월이든 내년 4월이든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서울시장의 상징성이나 각종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각 정당이나 정파는 놓칠 수 없는 자리. 선거비용은 물론 국민들은 서울시장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지루한 다툼까지 감내해야 한다.

청와대도 오 시장의 결정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가뜩이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임기말이 어수선한 와중에 오는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을 치를 경우에는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진 선거정국으로 인해 급속한 레임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조동석 기자 @superletters>

ds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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