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사례는 장기공연 작품을 몇 번씩 봤던 관객이라면 종종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가 커지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장기 공연을 하는 작품 수가 늘고 있지만, 제작사 측이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노하우는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객석이 꾸준히 찬다는 보장만 있다면, 장기 공연을 선호한다. 작품을 무대에 올린 뒤에는 대관료와 배우 인건비 등을 빼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반면, 수익은 계속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 관계자들은 장기 공연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똑같은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오히려 작품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점이 많다는 것. 영화와 달리 뮤지컬과 같은 무대 공연물은 출연진과 무대 상태, 객석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작품이 크게 흔들릴 여지가 생긴다. 이미 볼 만한 관객들은 다 본 상태에서, 새로운 관객을 어떻게 끌어모을지도 관건이다.
최근 장기 공연된 작품들이 줄줄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라이온킹(2006년ㆍ12개월 공연)은 36억원의 적자를 냈고, 드림걸스(2009 ㆍ6개월), 빌리 엘리어트(2010ㆍ7개월)가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2001년 초연의 흥행 신화에 도전한 ‘오페라의 유령’도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지난해부터 8개월간 공연된 ‘지킬앤하이드’가 드물게 100억원대(다음달 28일 폐막 기준) 흑자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연의 퀄리티가 (초반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시적으로 수익이 났다고 해도 공연의 퀄리티를 유지하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가 차기 공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장기 공연의 주적, ‘매너리즘’=A 뮤지컬 제작사는 공연 기간이 길어질수록, 첫 공연 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체크한다. 매주 주간회의를 갖고, 무대나 사운드, 배우들의 컨디션 등을 철저히 살핀다. 이때 공유하는 주간 보고서는 “배우 A가 발을 잘못 디뎌 사운드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 세세한 내용까지 다룬다. 배우들의 사기가 떨어졌거나 가벼운 질병이 돌고 있을 때도 대응책을 세운다. 감기가 유행한다면 분장실과 대기실에 공기 청정기나 가습기를 설치하는 식이다.
특히 장기 공연에서 매너리즘은 극의 긴장감과 완성도 유지에 가장 큰 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배우들이 충분히 쉬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공연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공연 관계자는 브로드웨이와 같은 ‘배우 노조’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돈 문제가 아니다. 일정 시간 노동 후에는 재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배우들의 컨디션까지는 감안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무대장치는 더욱 섬세하게=뮤지컬 ‘맘마미아’의 경우 음향 사고 원인을 꼼꼼하게 점검해 반복되지 않도록 했다. 공연 관계자는 “배우들이 얼굴에 부착하는 마이크가 땀에 젖으면 소금기 때문에 잡음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음향 사고를 막기 위해 마이크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은 장치와 소품까지 일일이 점검하는 것이다.
극적 긴장감을 배우들의 연기로 유지하기 버거워지면 무대 장치와 특수효과에 의존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인위적으로 소리를 키우거나 조명을 극단적으로 사용하고 폭죽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지킬앤하이드’의 경우 하이드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등장하는 장면에서 엄청난 천둥소리와 조명을 사용하자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비명 후에 관객들이 한동안 극에 녹아들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특수효과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겠지만 이처럼 선을 넘으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무대장치와 효과는 객석이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가 돼서는 곤란하다.
▶“장기 공연 시스템 정착돼야”=전문가들은 이제 국내서도 장기 공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우리는 외국과 같은 장기 공연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노하우가 부족하다. 앞으로 창작 뮤지컬이 성공하고 규모의 경제로 가기 위해선 장기 공연 시스템이 잘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찍이 장기 공연을 정착시킨 해외 제작 노하우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해외에서는 ‘쇼닥터’라는 전문 관리자가 있어, 장기 공연 작품이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얼마전 넌버벌 퍼포먼스 ‘비밥’의 쇼닥터로 한국을 찾은 다비드 오튼(DAVID OTTONE)은 ‘비밥’을 모니터링하고, 조만간 나름의 처방전을 내놓을 예정이다. 제작사 CJ E&M 관계자는 “장기 공연에도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쇼닥터는 작품의 긴 생명력과 품질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지 치기를 하고 주요 줄기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bonjod08>/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