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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왜 미움 받는가
일반인 “부자 되고파” 갈망속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 이중잣대

남의 성공에 상대적 박탈감 작용


富축적 과정 불공정 만연도 한몫

과거부터 천민자본주의 뿌리깊어


선글라스를 끼고 오픈카를 몰고 서울 올림픽대로를 질주하는 20대 남자. 옆자리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이 하만카돈 서라운드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이 남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어떨까. ‘나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 당연하다. 그러나 곧바로 “자식 부모 잘 만나서”라는 비아냥이 이어진다. 아마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인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들은 돈이 많아도 존경을 받는데, 왜 우리의 부자들에게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을까? 왜 우리의 부자들은 미움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부자는 나의 로망이자 적(敵)=부자에 대한 사시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부자는 분명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서울여대 부자학연구회가 일반인, 대학생, 전문가 그룹 등 설문대상을 구분해 실시한 한국 사회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111명의 응답자 중 110명이었고, ‘아니다’는 단 1명이었다. 당신의 자녀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107명이었고, ‘아니다’가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장 부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지 않다. 부자가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33%였고, ‘그렇지 않다’가 40%였다. 과거에 부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보느냐에는 ‘동의한다’가 13%였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73%였다. 부자들의 경제적 공헌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도 ‘동의한다’가 47%, ‘동의하지 않는다’가 53%로 더 많았다.

부자가 부럽지만, 그들을 존경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비단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공통적인 정서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뿌리 깊은 천민자본주의=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문학을 보더라도 부자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방향성이 읽힌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매점매석을 통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자와 권력자들의 유착과 이들의 불공정한 모습을 응징하고 있다.

판소리 5마당에서도 부자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이다. 흥부가에서는 동생에게도 부를 나눠주지 않는 놀부를 응징하고 있으며, 춘향가에서는 변 사또라는 권력가에 대한 반감을, 심청전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심청이를 팔아넘기는 인면수심을 다뤘다. 이들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들의 인식 속에 남아 있는 부자들도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해방 이후 혼란기 속에 고속성장을 거치면서 ‘졸부’가 등장했고, 정경유착 속에 ‘재벌’로 변화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만든 사회학=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주위 사람이 잘되면 내가 못되는 것보다 더 샘이 난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방이 열심히 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조직 행동을 연구한 경영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성취감보다 더욱 큰 것으로 이해한다. 일례로 여성의 경우 남자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한 성취감보다 남자 친구와 이별했을 때 느끼는 박탈감이 배나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런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히 작용한다. 지난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펼치다 자살하기 전에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 또한 부를 축적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유물=우리나라 부자에 대한 생각이 천민자본주의에 멈춰 있는 것은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한 불공정함이 자리잡고 있다. 김주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강점기와 군사정권시대 정경유착 등 부를 이루는 방법 면에서 공정하지 못했던 바가 크며, 그러다보니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부의 축적하는 시스템의 확보가 부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차적인 관건이다.

축적된 부의 사회 환원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일반인은 연소득의 약 2%를 매년 기부하고 있고, 부자들은 연소득의 약 6%를 매년 기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프로보노 등 기부문화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 속으로 기부문화가 정착하기가 요원하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회 회장(서울여대 교수)은 “한국 사회에서도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자가 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상당수를 사회로 돌려줘야 부의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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