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국인에게 부자의 의미는
‘○○억’…숫자만이 잣대…외국선 사회적 역할도 중요
“여러분, 부~자되세요.”

지난 2002년 유행한 한 카드회사 광고의 슬로건이다. 당시 이 슬로건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밥먹었니”란 말보다 더 많이 주고받을 정도로 히트를 쳤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슬로건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호되는 새해 덕담으로 통하고 있다. 해를 거치며 “부자되세요”란 말이 “돈 많이 많이 버세요”란 다소 노골적인 표현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보듯 한국사회의 부자는 ‘숫자’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현금 ○억원 이상, 부동산, 금융자산 ○억원 이상 등 금전이 부자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의 부자에 대한 조사에선 보유 재산과 함께 사회기부액 등 사회적 역할이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한국의 이 같은 경향은 각종 부자의 기준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분석한 ‘2011년 한국부자 보고서’는 부자로 정의할 수 있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한국인’이 지난해 말 기준 13만명으로 전년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수도권 부자들은 평균 자산이 34억원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기준도 높다. 현재 미국 등 해외에서 부자의 기준은 ‘밀리언에어(Millionaire)’라고 해서 100만달러, 한국 돈으로 10억원가량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기준은 세계 기준보다 2~3배쯤 높다. 실제 국내 최초로 ‘부자학’을 연구하고 있는 부자학연구학회도 한국의 부자(물질적 기준)를 ‘현금 10억원을 포함해 총 3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학회 회장(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한국에서 부자로 불리기 위한 액수는 해외보다 높다”면서 “이는 한국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됐을 뿐만 아니라 물질에 특히 더 높은 가치를 두는 한국인들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부자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행복’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면서 부자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 한동철 학회장은 “경제발전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물질적 부자는 모두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이 같은 예상이 틀렸다는 점을 알게 됐다”면서 “이전과 달리 새로운 부자의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진정한 부자는 물질, 정신, 사회적인 조건 등 3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된 사람”이라면서 “물질적으로 여유(30억원)가 있고 정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규정했다.

‘기업인=부자’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부자의 정의에 사회적인 역할이 포함되면서 단순히 돈만 많은 기업인과 돈이 있으면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기업인을 다르게 부를 필요성이 생겼다”면서 “돈만 많은 기업인은 재벌, 또는 자본가로 부르고 부자란 호칭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기업인에 한정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