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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년전 큰빚…근로자 돕는 일로 빛내야죠”
제대후 굶주린 동생들위해

공장 근로자들 모은 쌀 훔쳐



현재 회사서 마음의 빚 갚아

조합원 어려울 땐 사재털어

쌀·입학금 등 마련해 전달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과거’였다. 비록 혼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 경기 오산시 누읍동 아트원제지에서 16년째 노조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유문형(49·사진) 씨는 25년 전부터 그렇게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다.

‘나는 쌀도둑인데…,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유 씨의 ‘과거’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오산의 가난한 집안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유 씨는 오산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어린 동생 4명이 굶기를 ‘밥 먹듯이’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공장에 취직하려고 돌아다니다가 허탈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살짝 열려 있는 마을창고 문 틈새로 보관 중인 쌀을 본 순간 욕심이 생겼다. 영세공장이 유난히 많았던 동네 주민들이 마을 이장 수고비로 십시일반 모은 쌀이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쌀 한 움큼을 담고 내달렸다. 그날 유 씨는 동생들에게 흰 쌀밥을 배불리 먹였다. “동생들이 밥을 먹는 동안 왜 그렇게 무섭고 눈물이 나던지….”

공장 근로자들만 보면 죄의식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유 씨는 눈물을 삼키며 언젠가 ‘죗값을 치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해 회사에 취직했다. 유 씨는 직장생활 10년이 지난 1996년 8월 이 회사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이래 지금까지 무려 16년간 노조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동안 6번의 노조위원장 선거를 치렀으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 16년 연속으로 무분규의 대기록도 달성했다. 회사와 노조원들이 어려울 때 함께 고통을 감내한 사실을 노조원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2004년 워크아웃을 졸업할 때까지 노조원 70명이 감축되고 6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을 때도 그는 회사를 지켜내고 애환을 함께했다.


그는 월급을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운 노조원 150여명을 위해 회사를 설득하고 사재를 털어 모두 쌀 20㎏(40만원)씩을 지급했다. 아이 3명을 입양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던 조합원을 찾아가 도움을 줬고 대학 입학금도 마련해줬다. 연말이면 쌀 40㎏을 노조원들에게 지급했다. 근로자 가족 2명이 암과 투병 중일 때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성금 1000여만원을 모아 건네주기도 했다. 직장인밴드를 결성해 노사 화합도 유지했다. 노조원들이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달려갔다.

유 위원장은 ‘노사가 ‘가슴’으로 대화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노사 간 의견교류도 활발하다. 노조원들로부터 제기된 민원은 반드시 점검하고 조치를 취했다. 그는 “상생ㆍ협력의 노사관계로 불신의 벽을 깨뜨리면 노사분규가 생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유 씨는 “남몰래 공장 근로자들을 돕는 일로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다 털어놓고 나니 응어리가 조금 풀리려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두고 갚아나가야지요.” 그는 한동안 창문 밖을 응시했다.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산=박정규 기자/fob14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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