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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원 확정...조선 권신 한명회와 함께한 압구정은?
조선 세조 권신인 한명회(1415∼1487)가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 압구정은 한명회의 호로, 중국 송(宋)의 재상이었던 한기(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머물던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압구정에 대한 흔적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다. 압구정의 주인이던 한명회가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 당한 후, 이사람 저사람의 손을 거쳐 조선말에 박영효의 소유가 됐다. 그러나 박영효가 갑신정변의 주모자 중 한 명이라는 이유로 파괴되면서 지금은 표지석만 남았다.

압구정을 호로 사용한 한명회는 조선 전기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에 등극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로,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을 좌절시키고, 그들을 살해하는데 가담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으나, 성종 5년에 영의정과 병조판서에서 해임됐고, 압구정에서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탄핵돼 모든 관직에서 삭탈됐다. 또한 세조의 묘정에 배향되고,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윤비(尹妃) 사사(賜死) 사건에 관련됐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으나, 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 신원됐다. 


한편, 서울시의 ‘한강 공공성 회복’사업 일환으로 압구정 일대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로 주목을 받는 것이 겸재 정선이 남긴 그림 2점이다. 겸재의 화첩인 ‘경교명승첩’(영조17년, 1741년)에 전해 오는 그림은 겸재가 한강을 유람하면서 잠실 쪽에서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언덕 위의 정자가 압구정이다. 강 오른쪽이 금호동과 한남동 부근이고 검푸른색 산이 남산이며, 왼쪽 아래의 기와집들은 지체 높은 양반들의 별장으로 추정된다. 예나 지금이나 압구정 부근은 부자들이 모여 살던 ‘부자터’인 셈이다.

<이태형기자 @vmfhapxpdntm>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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