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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다니는 CCTV,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전봇대나 지붕 밑에 가만히 붙어 있던 CCTV들이 이제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량들에 달려 있는 CCTV와 블랙박스는 도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매 시각 기록하면서 CCTV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마다 동영상 촬영ㆍ편집 기능을 제공하면서 무언가 특이한 일이 생길 때면 바로바로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 유포되고 있다. 

CCTV가 범죄 예방과 인권 침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새로 등장한 ‘걸어 다니는 CCTV’들 역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버스나 택시에 등장한 CCTV, 블랙박스는 종종 일어나던 승객들의 운전자 폭행을 줄이고, 택시 강도 등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차량마다 달린 블랙박스는 교통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덕분에 교통사고 불발행위나 보험 사기 등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서울시에서는 버스에 달린 CCTV를 이용해 이면 주차를 단속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 동영상 역시 각종 사건 발생 시 가장 강력한 증거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고, 개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널리 알리는가 하면, 각종 재난 상황 발생 시 생생한 장면을 촬영ㆍ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사생활 침해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다. 택시기사가 블랙박스에 촬영된 ‘은밀한 사생활’을 미끼로 현역 의원에게 협박을 가하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소위 ‘막말남’ ‘할머니 폭행녀’ 등의 동영상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면서 사생활 침해 및 인권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CCTV들이 걸어 다니게 된 시대의 명과 암을 짚어봤다.

블랙박스로 교통사고 시비 가리고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범죄 고발

▶블랙박스는 교통사고 ‘판별사’
=자동차에 블랙박스가 달리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은 교통사고 시 시비를 가리기 쉬워졌으며, 자동차를 매개로 한 사기 협박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블랙박스에 촬영된 사고 전, 후의 화면들은 교통사고 시 가장 강력한 증거 자료로 널리 애용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통사고 발생 후 사고 조사 과정에서 ‘큰 목소리’가 많이 줄었다.

서울시내 모 경찰서의 교통계 경찰은 “블랙박스 전의 사고 조사는 서로 누가 큰 목소리를 내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가를 경쟁하는 싸움터 같은 분위기였다”며 “사고가 난 뒤 양측에서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감정이 격해지고, 심지어는 경찰서 내에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마다 블랙박스를 달아놓는 일이 늘어나면서 ‘증거 자료’가 제시되는 경우 사고를 유발한 측이 빨리 사과하고 조사를 마무리 짓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블랙박스가 가져온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교통사고를 빌미로 운전자를 협박하는 ‘자해공갈단’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멀쩡한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추거나 후진해 사고를 유발하고는 “네가 뒤에서 들이받았다”며 억지를 부리는 교통사고 빌미 협박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이 이런 억지를 부릴 여지가 줄었고, 자해공갈단의 준동이 많이 줄었다.

블랙박스는 뺑소니 검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사고차량이 도주하는 것을 목격한 차량들이 자신의 블랙박스 자료를 넘겨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박스 장착이 크게 증가한 최근 몇년 동안 뺑소니 검거율도 함께 급증해 지난 2006년 74.5%였던 검거율은 지난 2009년 88.6%까지 올랐다.

버스에 장착돼 있는 CCTV는 버스 안팎의 상황을 저장할 뿐 아니라 버스가 운행되는 길을 따라서 진행되는 이면 주차 단속에도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범죄 고발, 사건 제보는 ‘스마트폰’이 담당한다=최근에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자칫 묻히기 쉬운 사건들이 고발되고 경찰의 수사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과거 CCTV가 범죄 예방 및 검거에 도움을 줬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동영상들이 그 역할을 보조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졸업식 폭행 동영상이 한 예다. 한 학생의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이 동영상은 SNS과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번지면서 경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경찰은 스마트폰 촬영 화면 등을 근거로 해당 사건의 피의자를 확정하고 이들을 잡아 형사 처벌할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말 및 올해 6월 불거진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등도 스마트폰의 동영상 촬영 기능을 통해 경찰의 수사가 진행된 예다.

태풍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져 내릴 때도 스마트폰의 동영상 촬영 기능은 빛을 발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동영상 및 사진 촬영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재난지역의 현황을 알리고, 교통사고 등이 유발됐을 경우 조심해야 할 구간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재난구조대의 출동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벌이기도 한다.

황유진ㆍ양대근ㆍ문영규 기자/hyjgogo@heraldcorp.com



녹화된 동영상 빌미로 협박…신상털기로 사생활 침해 ‘마녀사냥’

▶1984년의 재림, ‘어디에나 빅브러더’
=반면 스마트폰 동영상이나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감시당하면서 인권 침해 및 사생활 침해도 야기되고 있다.

최근 국회 내에서 발생한 블랙박스 ‘괴담’이 한 예다. 한 현역 의원이 술에 취한 채 택시에 타서 여자와 ‘찐한’ 스킨십을 했는데 나중에 택시기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제시하면서 뒷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택시 내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눈 내용이 블랙박스 영상에 녹화돼 협박의 빌미로 사용됐다는 등의 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도 문제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여교사의 은밀한 부위를 찍어 공유하는가 하면, 폭언 등으로 교사를 흥분시켜 놓고 체벌을 가하려 하면 기가 막히게 촬영해 교사를 협박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애인 간의 은밀한 생활도 스마트폰 동영상을 통해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변심한 애인을 골탕먹이기 위해 애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개인정보와 함께 유출시키는 경우도 늘고 있다. 혹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성관계 동영상에 이름만 바꿔 붙여 유포시키다 경찰에 적발된 경우도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정보 침해 신고 상담 건수는 지난 2005년 1만8206건에서 2010년 5만5000여건으로 5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신상털이’ 놀이에 다치는 사람들=스마트폰을 통한 사건ㆍ사고의 제보가 늘면서 부작용도 늘고 있다. 특히 한번 퍼져 나가기 시작한 정보는 다시 쉽게 주워담을 수 없어 심각한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지하철 막말남’의 확인되지 않은 신상이 알려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7일 한 방송에서 20대 청년이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막말을 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 청년은 노인에게 “웃긴 XX”라며 “경찰서 가? 서울역에서 안 내리면 죽여버린다” 등의 말을 해 충격을 안겼고, 누리꾼은 몇 시간 만에 동영상 속 청년의 신상을 밝혀냈다. 그러나 공개된 신상이 청년의 것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정보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무한 확산되면서 ‘인터넷판 마녀사냥’ 재논란이 일었다.

이 밖에도 ‘지하철 할머니 폭행 동영상’이니, ‘욕하는 할머니-할미넴’이니 하는 영상들이 순전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유튜브 등에 속속 올라오고 있으며, 그때마다 잘못된 신상정보가 유포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떠돌아다니면서 2차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논란이 가중되자 지난 6월 27일 서울청 홍보실 박승일 경사는 트위터에 “지하철 막말남에 대한 잘못된 신상정보가 벌써 온라인을 통해 많이 확산되고 있다”며 “ (트위터의) RT 등은 신중하게 확인한 후 옮기자. 또 다른 피해자가 벌써 발생하고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자영ㆍ박병국ㆍ손미정 기자/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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