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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건축가가 본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
2010년 9월 1일, 상하이 엑스포의 이탈리아관에서 ‘능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아시아 및 유럽의 건축가들이 모여 도시와 건축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한국 측 발표자로 참석한 필자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건물이나 지역에 대한 미시적 논의 못지않게 시스템 전체에 대한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도시건축적 수단의 하나로 ‘저층 고밀도 복합건물’이라는 유형을 제안했다. 참석자 간에는 기본 전제에 대한 상당한 의견 통일이 이뤄졌다. 도시는 가장 중요한 미래의 키워드다. 도시가 승리해야 인류 문명이 살아남는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쓴 ‘도시의 승리’의 원본이 출판된 것은 2011년 2월이니, 이 심포지엄이 끝나고 5개월 후다. 만약 그보다 일찍 이 책이 출판돼 심포지엄 전에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면 나의 발표 내용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대전제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지만, 흥미로운 사례나 통계를 보강할 수는 있었을 듯하다. 그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은 나를 비롯한 오늘날의 건축가들이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바라보는 특정한 시선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는 도시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도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도시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실증적으로 설명해 나간다. 

도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에는 항상 일말의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간의 솔직한 경험이다. 교외의 신개발지로 도시의 무한 팽창을 반복해왔던 대한민국 도시개발사의 이론적 토대가 주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정당화됐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파트공화국이 됐고, 구도심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출퇴근 거리는 길어졌고, 수도권은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 우리에게 도시란 지켜야 할 그 자체의 가치는 별로 없으나 사업적으로는 흥미로운, 일종의 단기 투자 프로젝트 같은 것이 돼 갔다.

이 모든 것을 경제학적 관점 자체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물론 어불성설이다. 다만 그 관점이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될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도시의 승리’는 바로 그것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와 같은 건축가들로 하여금 관심을 두게 한다. 저자가 제인 제이콥스라는, 도시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소중히 다루는 도시연구가의 이론에 일단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의 하나다. 저자의 입장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스스로 전원생활자가 된 자신의 삶이 통념과 달리 매우 비환경친화적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을 정도의 자기성찰이 있기도 하다. 그는 외통수도 아니고, 순진하지도 않으며, 더더구나 덤벙대지 않는다. 지겨울 정도로 통계를 인용하는 전형적 미국 학자풍의 글쓰기가 결코 우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과학적 객관의 틀 안에서 움직이려 한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도시가 전원보다 더 환경친화적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아마도 많은 독자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미시적ㆍ단기적 관점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거시적ㆍ장기적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본다면 금방 이해가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즉 교외에 새로 지어진, 그 안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인근 대도시로 출퇴근하는 소위 ‘탄소 제로’의 전원마을보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사이에서 일상 대소사를 걸어다니며 해결하는 고밀도의 도심이 더 ‘그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또 다른 도시의 자산은 바로 사람이다. 그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고 무모하게 건물을 계속 지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하드웨어 만능주의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던 경제학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음에 대해 역설적으로 상쾌한 해방감마저 느낀다. 이 책을 계기로 도시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황두진/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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