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라 이우환의 그림은 ‘아트바젤’, ‘아모리쇼’ 등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미국 스위스 독일의 유명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앞다퉈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우환의 작업은 예술적 측면에서도, 또 글로벌 아트마켓에서도 공히 비중있게 다뤄진다.
그가 세계 정상급 미술관인 구겐하임 초대로 회고전을 가진다. 미국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Guggenheim Museum)은 이우환 회고전을 24일부터 넉 달간 개최한다. 한국 작가가 구겐하임에서 개인전을 갖는 것은 백남준(2000년) 이후 두 번째이고, 아시아 작가로는 중국 작가 차이궈창(蔡國强, 2008) 이후 세 번째다. 이우환으로서도 북미지역에서의 개인전은 처음이라 의미가 크다.
전시의 타이틀은 ‘Lee Ufan, 무한의 제시(Making Infinity)’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 ‘시적인 무한의 순간’을 펼쳐보이겠다는 뜻으로, 조각 회화 드로잉 및 설치작품이 두루 나온다. 달팽이처럼 둥글게 이어지며 6개의 층을 이루는 구겐하임의 원형홀과 램프, 부속갤러리(4, 7층) 등 미술관 전관에는 이우환의 1960년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대표작과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신작 등 90여점이 전시된다. 대부분 미국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다.
경남 함안 태생인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일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래서 늘 논리를 중시한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을 천착하는 ‘모노하’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하며, ‘선’ ‘점’ ‘바람’ 시리즈를 통해 미니멀하면서도 사색적인 작업을 해왔다.
이우환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한국, 일본, 유럽을 무시로 오가며 활동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선 일본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유럽에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생존 한국 작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긴 하나, 아직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도 그래서 나온다.
작가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그는 그간 집필한 책만도 17권에 이른다. 단편 ‘뱀’, ‘아크로폴리스와 돌멩이’는 일본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우환이 30대 중반에 일본에서 펴낸 ‘만남을 찾아서’(한국어판 2011년 학고재 刊)에는 서구의 개념미술, 미니멀아트, 팝아트를 비판하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철학적 지혜를 알길 없는 서구 근대철학은 주관주의적 혼란과 자기 소외로 점철됐다는 것. 결국 서구 모더니즘에서 실종된 ‘타자’,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의 만남을 추구하는 게 그의 예술의 핵심이 됐다. 자연에서 구해온 돌과 철판을 마주하게 한 설치작업은 이런 만남의 순간을 함축한 것이다. 나와 타자가, 또 의식과 세계가 조우하는 순간이다.
이우환은 이렇듯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재료, 관객과 장소의 경험적 관계를 강조한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절제의 방법론에 뿌리를 둔 그의 엄정한 제스처는 생생하고 강렬한 여백을 창출한다.
이우환은 점 한두 개로 이뤄진 회화에 대해 “무지(無地)의 캔버스에 점을 찍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리는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관계짓게 하는 것이다. 터치와 논터치의 겨룸과 상호침투의 간섭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여백 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이 되게 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볼 때 화면에 찍힌 점만 봐선 곤란하다. 겉으로 드러난 점들을 넘어, 점과 여백, 점과 점의 관계, 나아가 그림과 그림이 걸려 있는 공간 전체와의 관계를 차분히 음미해야 한다. 점과 선의 조응에 의해 무한감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곧 이우환의 예술이다.
이번 전시는 삼성의 후원과 한국국제교류재단, 재팬파운데이션의 지원으로 성사됐다. 큐레이팅은 알렉산드리아 몬로가 맡았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