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혼신을 다한 연주와 진심, 그의 사랑. 이 모든 것이 거대한 감동을 안겼다.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 그리고 리스트’ 공연에는 2000여 관객이 몰려, 그의 연주에 심취했다. 연주자에게도 어려운 작곡가로 통하는 리스트의 비르투오소적 기교를 정확하게 짚어냈으며, ‘리스트와 문학’을 큰 주제로 한 드라마틱한 전개가 객석의 집중도를 높였다.
리스트가 받은 문학적 영향을 한데 묶어 전하려는 시도는 참신했다. 어린시절 바이런을 읽었고, 커서는 빅토르 위고, 알렉산드르 뒤마, 조르주 상드와 교류했던 리스트의 음악적 영감이 다수 문학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착안, 백건우는 리스트와 문학을 묶어 또하나의 리스트를 창조했다. 문학과 연계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피아노 선율로 다채롭게 표현됐다.
리스트라는 인물이 최고의 기교적 연주자로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날 공연에서 백건우는 기교와 서정, 양 극단을 오가는 폭넓은 음악 세계를 지닌 리스트를 새롭게 조명했다. 100분간 고개를 푹 숙인 채 피아노에만 몰입하는 그의 연주는 객석을 숨죽이게 했다.
이날 마지막 곡은 ‘순례의 해’ 제2권의 ‘단테를 읽고’가 장식했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시를 그대로 차용한 이 곡은 리스트가 부릴 수 있는 모든 기교가 총망라된 최고 난도의 곡이다. 백건우는 물 흐르는 듯한 속주와 파워풀한 타건을 오가며, 지옥의 문이 열리고, 고통받는 영혼들이 눈물 흘리며, 나중엔 천국에서 구원받는 과정을 섬세하게 전달했다.
또다른 압권은 앙코르 무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 영화 ‘시’에서 들었던 윤정희의 고운 목소리가 빚어낸 시 낭송이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이내 백건우의 연주가 흘렀다. 앙코르 곡은 바로 리스트의 ‘사랑의 꿈’. ‘사랑’을 읊는 아내와 ‘사랑의 꿈’을 연주하는 남편. 문학과 음악으로 예술적 소통을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비현실로 느껴질 정도로 로맨틱했다. 앙코르 무대를 마친 남편은 바삐 걸음을 옮기더니, 무대 뒤에서 기다리던 아내의 손을 잡아 끌고 무대 중앙에 섰다. 그제서야 활짝 웃어보이며 아내의 어깨를 뜨겁게 감싸안고 관객들에게 큰 인사를 했다. 이날 공연은 ‘백건우와 리스트’ 못지않게 ‘백건우와 윤정희’의 아름다운 결합을 보여주는 감동의 무대였다.
한편 이날 공연은 백건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2000여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해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 다수의 정재계 인사들이 공연을 관람했다. 오는 25일에는 ‘백건우 그리고 리스트’의 두 번째 공연이 열린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