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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 12년만에 맞붙은 의사와 약사
알만한 사람들의 ‘밥그릇 싸움’은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둘러싼 의사와 약사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의약품 약국외 판매로 줄어들 수 있는 매출을 의사들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의사 처방 없이도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돌려 막으려는 대한약사회, 그리고 전문의약품 가운데 단 하나도 일반약으로 내줄 수 없다고 버티는 대한의사회, 이들의 밥그릇 다툼이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12년만에 재현되는 모습이다.

밥그릇 싸움에 불을 댕긴 것은 약사회 쪽이다. 지금의 약사회와 의사회의 대립 구도는 당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추진하는 보건복지부와 약사회가 대립하는 구도만 존재했다. 그러다 약사회 반발로 정부 입법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정부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약심)를 통한 ‘의약품 재분류’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이로 인해 전문약과 일반약 사이의 재분류를 진행하게 됐고 결국 약사회에 한정되던 전선(戰線)이 ‘약사회-의사회’로 확전됐다.

약사회는 의약품 재분류를 둘러싼 전선을 확대하는 동시에 정부와 의사에 대한 압박 강도도 높이고 있다. 지난 18일 약사회는 전국 임원과 분회장이 긴급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 의약외품 전환 계획을 비난하면서 1200개에 이르는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 선택의원제 즉각 도입, 의사수가 삭감 등 의사회를 자극하는 내용을 요구했다. 의사회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런 약사회 주장에 처음에는 극렬하게 반응하던 의사회는 최근 거리두기에 나섰다. 오는 22일 ‘전국 의사대표자 대회’를 열기로 한 일정도 무기한 연기시켰다. 이는 일반약의 약국외 판매에 대해 약사회가 집단 반발하는 상황에서 의료계마저 집단 행동에 나설 경우 자칫 의료계의 정당한 주장과 요구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반대하는 약사회가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회가 싸잡아 비난받을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인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재분류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전략과 전술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은 약심이 거듭될수록 그 강도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약심은 지난 15일 44개 품목에 이르는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하는 것을 논의한 데 이어 오는 21일에는 의사회와 약사회의 이해가 직결되어있는 전문약-일반약 스위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이다.

<박도제 기자 @bullmoth>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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