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하나 있다. 고풍스럽다. 창고에서 막 먼지를 털어낸 듯 하다. 엉덩이를 대고 앉는 부분이 격자 무늬의 구멍이 뚫려 있다. 벌집 마냥, 쇠창살 마냥. 통풍을 의도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기발한 아이디어 의자가 아닐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의자의 네 다리가 파란 색이란 점.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놀랍게도 동물의 다리 형상이다. 왠지 사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제목은 <사치와 문명>. 그렇다면 저 의자는 사치의 상징이란 말인가. 아니면 한 시대의 문명을 보여주는 의자란 말인가. 대체 그 문명은 어디 것인가. 무슨 용도로, 누가 저 의자를 만들었을까. 꼬리 무는 의문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사치와 문명>(뜨인돌. 2011)은 책 제목 대로 사치라는 키워드로 인류의 역사를 탐험한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통념을 무너뜨린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행위, 문화 예술적 욕망이 모두 ‘사치’다”
저자는 이 관점을 토대로 세계 역사에 새겨진 주요 문명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사치란 잣대로 유물 유적을 바라보는 점이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1882년 프랑스 브라상푸이에서 출토된 2만 2,000년 전의 한 여인 조각상이 출토되었다. 그간 출토된 많은 여인의 조각상들과 달리 이 조각상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두건을 쓰는 행위 자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도, 자연의 위력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도 아니었다. 구석기 시대 인류 역시 삶의 부수적인 부분인 ‘사치’를 열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처음으로 행한 ‘사치스러운’ 행위는 무엇일까? 저자는 “불의 발견은 그 유용성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최초의 사치 행위 중 하나”라고 간주한다. 더불어 인간은 불의 발견으로 인해 구운 살코기를 맛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욕구와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개성을 부여하려는 의도, 나아가 짐승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열망에서 비롯된 모든 사치 행위들이 결국 문명을 형성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선사 시대 유물을 캐다 보면 굴 껍데기와 생선 가시, 새의 뼈가 쌓인 더미에서 반지와 항아리, 장난감 등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된 동굴 벽화에서 예술과 회화를 보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묘지나 종교 유적에서 발견된 최초의 장신구들 역시 치장에 대한 욕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사치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본문중
그런가 하면 사치는 역사를 바꾼 문화였다. 문명의 전환점에선 언제나 극단적인 사치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 시대에,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그리스에서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사치의 정점을 이루었다. 저자는 당시의 사치 활동으로 지어진 많은 건축물과 예술품들을 통해 우리는 각 문명의 특징을 규정 지을 수 있다고 봤다. 책 중 일부 대목.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시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들어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던 경기가 노동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로마에서는 일하는 날이 하루면 노는 날은 하루나 이틀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여가의 사치가 노동의 열정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사회가 퇴조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책은 수메르 문명, 마야와 아스텍 문명,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아프리카 문명, 중국 문명 등 각 문명들의 사치의 시원(始原)을 찾아 떠나는 지적인 여행이다. 한가지. 책 표지의 기묘한 의자는 기원전 1400년~1300년 경 이집트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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