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충현은 평범하고 조촐한 도시 공간을 자신만의 회화적 색깔로 독특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낮은 톤으로 차분히 그려낸 그림들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전시 타이틀을 ‘살풍경(殺風景)’이라 한 것은 보잘 것 없이 메마르고, 스산한 정경을 담았기 때문.
작가는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찾는 한강시민공원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지난 2005년 첫 개인전을 통해 선보였던 이 시리즈를 좀 더 깊히 파고들며 밀도를 더한 것.
사실 노충현이 그린 풍경은 별반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새롭다. 한강 둔치에 덩그러니 세워진 무채색의 캠핑카라든가, 장마로 물이 들어찬 테니스장의 모습은 지극히 낯익은 모습이지만 쓸쓸한 정조를 드리운다. 작가는 한강시민공원을 ’과잉과 조급함’이 폭발할 듯 분출하는 대도시에서 ‘쉼’이 있는 여백의 공간으로 표현해냈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한때 무대미술 일을 했던 작가는 이 텅 빈 공간을 주인공으로, ’심리적 무대’를 만들어낸 것.
테레핀이 많이 섞여 ‘착’ 가라앉은 색채와, 거친 붓 터치로 채워진 풍경은 왠지 처연하다. 풍경의 디테일들이 흐릿하게 지워진 자리엔 나지막한 소리며 습기를 머금은 들풀의 냄새가 떠도는 듯하다. 이렇듯 회화에 촉각적ㆍ청각적 경험을 이입함으로써 노충현은 회화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있다. 빛바랜 사진을 연상케 하는 그림은 현대인이 맞닥뜨린 상실감과 무기력함을 차갑게 투영한다. 그리곤 포근히 위무한다.
미술평론가 강홍구 씨는 “노충현의 그림에선 소리가 들린다. 눈, 비, 황사, 시멘트가루, 먼지 같은 게 쏟아지는 소리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소리, 보다 납작해진 그림….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풍경이지만 느끼는 것은 촉각이나 청각이 된다”고 평했다.
그간 ‘살풍경’ ‘자리’ ‘실밀실’ 연작에서 삭막한 도시풍경 속 상실의 정서, 공간의 장소성을 문학적 정서로 표현해온 작가는 현재 몽인아트센터 입주작가로 체류하며 작업 중이다. (051)747-8853 <사진은 노충현 작 야영 camping 2011 유화. 112 X 145.5cm 등. 사진제공=조현화랑>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