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관장은 “요즘들어 한국현대미술은 세계 곳곳에 안 나가는 곳이 없지만 50년 전만 해도 정말 척박했다”며 “해외에서 한국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의 실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자료가 태부족해 전시를 꾸미게 됐다”고 밝혔다. 또 “한국 현대미술이 그동안 해외에 어떻게 소개돼,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를 진단해 보고,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소개되기 시작한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40여년의 역사를 출품 작품 영상물, 도록, 리플릿, 신문·잡지 기사, 정기간행물을 통해 보여준다. 대부분이 김 관장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 어깨가 부서지도록 메고 다닌 끝에 모은 자료들이다. 또 국립현대미술관과 사립미술관들, 국제전 참가작가 관련자료들도 포함됐다.
이번 전시를 살펴보면 한국 현대미술이 지난 5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에야 세계 정상급 미술관인 미국 구겐하임에서 한국작가가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베니스비엔날레에도 별도 한국관이 조성돼 전시가 열리지만 한국미술이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던 1958년에는 참으로 열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미국 뉴욕의 월드하우스 갤러리의 프세티 여사가 1957년 내한해 작품을 선별한 뒤, 이듬해 전시를 꾸린 게 최초였다. 이 화랑에서 1958년‘한국현대회화전’이란 이름으로 35명의 작품 62점이 소개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몇쪽 안되는 자료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파리비엔날레를 기점으로 해외 미술제에 매년 지속적으로 참가했는데, 참여작가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과 잡음 또한 끊이지 않았음을 각종 자료와 언론보도를 통해 살필 수 있다. 양대 비엔날레 작가 선정이 추상에 쏠리는 등 공정치 못하다며 반대편 화가(주로 구상화가)들이 연판장을 돌린 ‘108인 연서 소동’이 그 것.
김 관장은 “자료는 역사이고 힘인데도 우리는 기초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역사를 남기는 일에 너무 소홀하다“며 ”근대미술의 경우 자료가 상실돼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어 안타깝다. 자료의 중요성을 잘 인식해 체계적으로 수집 보관하고 이를 연구하는 나라가 진정한 문화선진국“이라고 지적했다.
중고교 시절 취미로 시작했던 미술자료 수집이 이제 숙명이 된 그는 인사동 등을 누비며 무거운 화집들을 메고 다니다가 목 뒤에 커다란 혹이 생겨 수술도 받았다. 혹이 신경을 눌러 하마터면 큰 화를 입을 뻔 했던 것.
갖가지 자료 속에 파묻혀 지내느라 요즘도 그 흔한 등산 한번 못간채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김 관장은 “남이 돌아보지 않는 ‘자료’와 ‘역사’를 챙겨 한국미술사의 빈 틈을 채우곤 있지만 방대한 자료를 챙기고 분류하며, 연구자 등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일은 사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라며 정부및 문화계 지원이 절실함을 토로했다. (02)730-6216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