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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교생이 봉사활동 하는 ‘명문 대안학교’ 지리산고

재작년(2010학년도)과 지난해(2011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잠비아 출신의 켄트 카마숨바(농경제학과) 씨와 김자정(의예과) 씨를 잇달아 서울대에 합격시키며 일약 주목받는 고등학교로 떠오른 경남 산청군의 지리산고. 이 학교는 지난 2004년 개교해 폐교된 2층짜리 초등학교 분교를 사용하는 작은 시골학교지만, 카마숨바씨나 김씨를 비롯한 많은 졸업생이 해마다 명문대나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지리산고는 가난한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대안학교로 개교해, 지난 2007년 정부 인가를 받아 대안교육 특성화고교가 됐다. 지난해에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고교교육력제고시범학교로 지정받았다. 이에 따라 이 학교는 기초ㆍ심화교과 등 학생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방식은 학기 초 본격 시행돼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다수 학생과 교사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멀티미디어 수업은 물론 학생 멘토링까지”=지난 20일 지리산고의 한 교실. 1학년 학생들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은 심화교과인 ‘영어청해’. 교재는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등 해외 유명 일간지의 인터넷판 인쇄본과 주간지 기사와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기술ㆍ디자인ㆍ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20분 남짓 하는 짧은 강연인 ‘테드(TED)’ 동영상. 이른바 ‘멀티미디어’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일간지 인터넷판 인쇄본에 연신 읽으며, 해석이 막히거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문장을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학교 외부 강사인 교사는 학생들 사이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꾸준히 질문에 답했다. 수업이 끝난 후 해당 교사는 바로 귀가하지 않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등 ‘상담’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해당 교과에 걸친 ‘Q&A(질문과 대답)’가 아니라 대학 진학하는 법, 영어를 비롯한 각종 과목 공부법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학생들과 주고받았다.

“부끄럽다”며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학생은 “어제 수업을 위해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영어단어 200개를 따로 외웠는데도 해석을 하기에 (실력이) 부친다”면서도 “열심히 따라가겠다”며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태민(16) 군은 “같이 쓰는 독해 교재가 어렵지만, 미리 한 번 읽고 나오니 수업에 도움이 된다”며 “단순 수업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들의 ‘멘토’까지 자처해 주시니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교과부의 ‘고교교육력 제고 시험사업’은 학생의 적성, 능력, 흥미를 고려해 교육 내용이나 방법, 속도 등을 달리해 수준별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수준별 선택이 필요한 교과(영어ㆍ수학)는 기초 및 심화과정을 개설하여 학생의 수준과 학습속도에 맞게 계열화된 학습 기회 제공하고, 영역별 선택이 필요한 교과(사회ㆍ예체능 등)는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여 학생의 적성, 소질, 흥미에 따른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게 된다.

지리산고에는 1~2학년에 걸쳐 기초교과로 ‘수학의 기본 ⅠㆍⅡ’ ‘영어의 기본 ⅠㆍⅡ’, 심화교과로 ‘영어문법’ ‘영어청해’ ‘고급수학’ 등이 개설돼 있다. 이 같은 수업은 정규 교과나 방과후 수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지리산고는 올 2학기에서 해당 사업과 관련된 수업의 평가와 이수에 관한 사항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겨쳐 확정할 예정이다. 기초ㆍ심화 과정의 1주 당 운영시간은 각 4시간이다. 지리산고는 ‘고교교육력제고사업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교과부로부터 약 8000여만원을 지원받았다.

김갑숙 지리산고 교무부장 교사는 “고교교육력제고 사업을 통한 기초ㆍ심화반 수업은 아직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대부분 만족스러운 편”이라며 “농산어촌에 위치한 학교에 여건 상 심화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가 큰데, 다행히 부산에서 영어와 수학 외부 강사를 모셔왔다. 실력도 좋은 데다 학생 상담도 하는 등 열정도 크다”고 전했다. 


▶“나도 힘들지만 더 어려운 이웃 도우며 보람”=지리산고의 전교생은 외부 위탁 학생 29명을 합쳐 103명, 교사도 겨우 11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학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다.

하지만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학교가 운영돼 전교생이 무료로 기숙사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시설, 교재, 교복, 식비, 기숙사비까지 학교에서 모두 지원받는다.

대신 학생들은 이렇게 받은 고마움을 또 다른 어려운 이에게 봉사로 갚는다. 학교 인근 마을의 독거노인에 대한 식사 수발 등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매주 한번 인근 진주시의 종합병원을 찾아 몸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목욕봉사를 실시한다. 또 농작물 수확, 비닐하루스 정리 등 학교 인근 농가의 일손을 돕고, 인근 관광지 주변을 청소하고 무료 급식소 일손을 돕는 등의 수학여행과 졸업여행을 떠난다. 그 결과 지난해 전국 자원봉사대회 경남 1위,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지리산고 수업에는 정규 수업과 재량활동에 ‘본봉사활동’ 시간이 포함돼 있다. 특히 1학년의 경우 학교 인근 마을, 2ㆍ3학년의 경우 진주시로 넘어가 어려운 초ㆍ중학생들을 위한 ‘무료 과외 봉사’ 도 한다. 학생들은 영어ㆍ수학 등 교과목을 가르치거나 음악ㆍ미술 등 특기적성 부문을 가르친다.

현재 진주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2학년 이솔희(17) 양은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언니’ ‘누나’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할 때, 내가 아이들과 교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목욕봉사를 하는 2학년 손민경(17) 양도 “1주일에 한 번 내가 올 때만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있다”며 “그 분이 먹을 것을 챙겨주고 할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눈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박해성 지리산고 교장은 “학교에서 보살펴 준 만큼 불쌍한 사람을 도우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며 “봉사를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배동인 교과부 창의경영학교지원팀장은 “지리산고의 경우 전교생이 1소규모 학교임에도 우수한 교사와 열성적인 학생들 이 있어 고교교육력 제고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며 “이 학교의 모델을 소규모학교의 모델로 발전, 적용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산청=신상윤기자 @ssyken>
산청=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

[사진설명=경남 산청군에 위치한 대안교육 특성화고는 2004년 개교 이래 상당수 졸업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창의경영학교로 지정돼 고교교육력제고 사업 등을 통해 기초ㆍ심화반 수업 등 새로운 수업 방식을 도입하는 한편 봉사활동, 체험학습 등 인성교육도 강화하며 ‘좋은 학교’ 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사진제공=지리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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