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서커스의 추억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서커스 장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접었다 펴고 있었고, 곡예사는 공중그네에 앉아 아슬아슬해 보이는 묘기를 펼치고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을 태연한 표정으로 해내는 그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이 놀라운 광경들은 그저 부단한 노력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심을 잃고 변해가던 어느 날, 잃어버렸던 나의 동심을 바레카이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레카이’는 태양의 서커스의 세 번째 내한공연으로 2007년 ‘퀴담’ 2008년 ‘알레그리아’에 이어 한국을 찾은 작품이다. 바레카이는 집시의 언어로 ‘어디든지’를 뜻하며, 바람이 이끄는 곳 어디든지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연은 화산 꼭대기에 자리 한 ’바레카이’ 라는 마법의 숲에 떨어진 이카로스가 신비한 숲 속 생명체들의 도움으로 삶의 희망과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한편의 동화책처럼
공연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모습의 대형 천막 ‘빅탑’에서 진행된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원색대비가 인상적인 공연장을 들어갈 때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된 것 같다. 하늘에서 이카로스가 날개를 다친 한 마리의 작은 새가 되어 떨어지고, 무대 위에는 정적이 흐른다. 이카로스는 다양한 숲 속 생명체들을 만나게 되고, 신비한 생명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매력을 뽐내게 된다. 또한, 중간마다 등장하는 광대들은 우스꽝스러운 행동들로 공연 중 쌓였던 극도의 긴장감을 완화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공연의 백미인 2부의 마지막 ‘러시안 스윙’은 2개의 러시안 그네를 이용한 곡예인데, 하얀 캔버스 위로 날아다니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슬아슬함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게 된다. 이 장면은 ‘서커스는 짜릿해야 제맛이지!’라고 말하는 관객들에게 순도 100%의 만족을 선사한다.
공연장을 나올 때면 서커스를 본 것이 아니라 동화 속 세상에 들어갔다가 온 것 같은 몽환적이 느낌이 든다.
서커스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바레카이는 곡예만을 늘어놓는 서커스가 아니라 스토리위주의 뮤지컬과 더 가깝다. 기예나 곡예들은 스토리에 녹아 들어가 극의 흐림을 매끄럽게 만들어 준다. 눈에 띄는 것은 무대장치와 노래, 그리고 배우들의 의상이다. 무대에는 300그루가 넘는 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고, 무대 위편에는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계단이 자리 잡고 있다.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무 숲 뒤에는 라이브밴드가 자리하며 공연 시간 내내 흥을 돋우는 신나는 곡들을 연주하여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다.
동화적 상상력을 더한 형형색색의 화려한 의상들은 공연 내내 배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다. 독특한 모양의 의상들은 오스카상 수상자인 에이코 이시오카가 그리스 신화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을 의상팀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것이라고 하니 눈여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