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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시인의 집
T.S. 엘리어트의 시구를 빌려 ‘잔인하다’며 투덜대온 4월이 올해는 참 따뜻하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책으로만 만나온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며 영원한 별이 된 시인, 미당 서정주와 이상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기 때문이다.
4일, 미당이 그의 말년 30여년을 보낸 관악산 밑 남현동 집이 일반에 개방됐다. 시인이 타계한 뒤 방치돼 폐허로 변한 집을 서울시가 12억원에 사들여 미당의 체취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미당이 1970년 대지 24평을 매입해 요모조모 공간을 쪼개 직접 설계한 2층 양옥집은 구석구석 세심함이 배어 있다. 1층 전시방에는 그의 깐깐한 성격만큼이나 단단한 지팡이들과 멋스런 모자들, 즐겨 사용한 파이프와 세계여행길에 사온 뿔나팔 등 진기한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허수롭지 않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몇 가지 물건도 있다. 1989년 3월 6일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팔할이 바람이다’를 주었다는 걸 적어놓은 원고지,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세계 2000여개 산을 써내려간 원고지 등도 있다. 그중 흥미로운 공간은 아담한 부엌. 식탁에 하이트 캔맥주 하나가 올라가 있다.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다. 워낙 술을 많이 드시는 통에 며느님께서 이걸로 채워놓으셨다 한다. 잡풀이 우거졌던 작은 뜰에도 많은 꽃이 심겼다. 국화라는 하얀 팻말이 붙은 자리에 흙이 부드럽다. 조만간 파란 싹이 돋아날 게다.
서촌 통인동 154-10번지 천재시인 이상의 집에도 마침내 봄이 왔다. 흔적 없이 사라질 이상의 집이 우여곡절 끝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민은행이 땅을 매입해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증한 이 집은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설계를 맡아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난다. 아름지기는 6일부터 ‘이상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건축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오는 6월 본격적인 착공을 앞둔 일종의 예술 진혼제다.
통인동 집은 이상이 세 살 때부터 백부의 양자로 입적돼 24살까지 거의 일생을 산 집으로, 원래 집은 남아 있지 않다. 본래 145평이나 되는 너른 집터가 쪼개져 새로 여러 채의 한옥이 들어서면서 최근까지 이불집, 방앗간이 있었다. 이상의 집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30년대 모더니스트들의 요람이었던 ‘제비다방’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의 집이 있다는 현실감은 시로 만나는 추상성과는 좀 다르다. 미당의 집에 가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노래가 나오고, ‘국화 옆에서’ ‘질마재 신화’가 다가온다. 시를 몸으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사는 데 바빠서, 혹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 벌개져 우리의 풍성한 문학적 자산, 문화유산을 챙기는데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근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문화예술을 화려하게 피워낸 많은 작가의 생활 흔적을 찾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후손들도 외국에 나가 사는 경우가 많아 보존은 더더욱 힘들다. 문화유산의 보존이 국가가 나서서 해주는 것으로만 여겼다면 이젠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내셔널트러스트와 같은 문화시민운동과 뜻 있는 이들이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다양한 문학선양회 등 민간의 노력은 값지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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