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은 멸하고 시대는 변한다.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문예동인지 ’폐허’의 제호를 따온 독일 시인 J.C.F.실러의 시다. ’부활, 갱생’을 의미했으나 단 2호밖에 나오지 않았던 문예지 ’폐허’의 문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인문학관은 오는 15일부터 6월15일까지 ‘그 새벽에 온 사람들Ⅱ’라는 제목으로 ‘폐허’를 통해 1920년대 문학을 돌아보는 3인전을 연다. 염상섭 오상순 김억 등 동인지 ’폐허’를 중심으로 활동한 세 문인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영인문학관이 기획한 이 같은 전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해 국내 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광수, 김동인, 주요한을 조명했던 것에 이어 한국문학 100년의 흐름을 연대순을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폐허’의 문인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의미깊은 것은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소설로 꼽히는 ‘삼대’의 작가 염상섭을 비롯해 초월적 사유를 처음으로 시에 담은 오상순, 서구문학의 매개자 김억 등이 바로 ’폐허’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문인이라는 점이다. 특히 당대 쌍벽을 이뤘던 문예지 ’창조’가 평안도 출신 문인들의 동인지였다면 ‘폐허’는 서울 출신 문인들이 모여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 문예지였다는 점에서 이번 기획전은 1920년대 한국문학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표가 되리라는 분석이다. 서울 출신 문인들이 특히나 적은 한국 문학에서 ’폐허’파를 서울 출신 문인 3인방이 주도한 것은 우리 근대문학사의 또 하나의 특기사항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 뜻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염상섭의 육필 원고와 편지, ’공초’ 오상순의 초기 시집과 파이프 등 애장품들이 전시된다. 또 오상순이 당대 문학 지망생들과 기성 문인들이 어울려 즉흥적으로쓴 글을 모은 ‘청동문학’ 46권도 눈에 띈다. 김억은 시 원고와 에드거 앨런 포의 ‘침묵’ 번역 원고 등이 전시된다.
전시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권영민, 이인화, 김미현, 강인숙, 송우혜 등 작가와 평론가들의 강연회가 열린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