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정유사들은 그동안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정유사가 개입할 수 없는 투명한 시장 논리로 결정되며, 국내시장에서 얻는 이익이 적다 등의 이유를 들며 정부의 가격 인하 압력을 이리저리 피해왔다.
SK에너지가 지난 3일 사상 초유로 ℓ당 100원의 휘발유ㆍ경유 소비자 가격 인하를 단행하자, 최근 정부의 압박 수위가 비등점을 넘을 만큼 심해진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정유업계에선 보고 있다.
최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으로부터 한국전력은 적자를 보고 있다며 “성의표시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이 나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의 주유소 원적지 관리에 대해 담합을 적발하고 5월 중 대규모 과징금을 매길 준비를 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석유제품가격 태스크포스(TF) 결과도 발표 연기를 거듭한 끝에 금명간 공개된다. 애초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이 나온 뒤 구성된 TF여서, 그 결과는 정유사에 유리하지 않을 게 뻔하다.
SK에너지는 지경부 TF 결과 발표 직전에 자진해서 가격 인하를 발표함으로써 정부로 부터 높은 평가까지 받았다. 최 장관은 “고유가로 인한 국민들의 부담을 나눠지겠다는 SK에너지의 가격인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분담과 상생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이겨 내기 바란다”고 평했다.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가 가격 인하를 체감할 수 있는 인하책을 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더구나 정유사들은 올 1분기 사상 최대 실적까지 거뒀다. 수출 매출이 늘어 정부의 고환율 정책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SK에너지는 이번 가격 인하 단행으로 인해 3개월 동안 휘발유ㆍ경유 수입 포기액이 최소한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SK에너지의 국내 휘발유ㆍ경유 시장점유율은 35%이며, 다른 정유 3사가 똑같이 ℓ당 100원씩을 내린다고 가정하면 전체 정유 4사가 3개월간 포기하는 이익 규모는 8500억원 이상이다.
정유사 관계자는 “SK가 국내 시장에서 이익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제 제품 가격과 정유사의 대리점 공급가격의 차이가 ℓ당 80원 수준인데 그 기간동안 오히려 적자를 감수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주유소 유통 마진 감시나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고유가 대책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더 높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