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시크릿’이 불러온 열풍은 가히 맹신 수준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세상의 밝은 면을 보고 마음에 좋은 생각을 품고 소망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이뤄진다는 긍정의 신화는 허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통했다. 긍정이란 말에 한 줄 걸친 숱한 자기계발서와 심리서, 경영서들이 줄을 이었고 여기에 기댄 라이프코치들도 때를 만났다.
이제 사람들은 회의하기 시작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질문은 피하면서 내 삶은 진정 행복했는지, 사회는 어떻게 됐는지 바버라 에런 라이크는 긍정의 이면에 감춰진 불안을 예리하게 직시하며 긍정적 사고가 외면하는 다른 한 편의 진실을 들려준다. 여기엔 미국의 뿌리 깊은 긍정적 사고가 어떻게 국가주의와 결합돼 왔는지, 종교와 기업의 호응, 긍정신화가 만들어낸 산업들이 망라된다.
저자가 비판의 날을 세우는 건 긍정적 사고 자체라기보다 무비판적 주술적 긍정신화다. 가령 면역체계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그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병이 낫는다든지, 너나없이 양자물리학의 파동이론과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먹이며 우주와 교감하고 창조한다는 환상들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머리 겔만에 따르면 이런 양자물리학의 얘기들은 헛소리일 뿐이다. 저자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제멋대로 해석한 이런 사이비 과학적 헛소리들이 어떻게 확산·재생산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또 다른 긍정신화의 문제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가령 기업이 도산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면 그 책임은 오로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필연성을 굳게 믿지 않은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긍정이란 문패를 내걸었더라도 다 같은 건 아니다. 긍정심리학자들은 대개 긍정적 사고의 대중적 버전과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려 하지만 과학적이라 주장하는 것들에 한계가 있다.
긍정신화의 폭발적인 파급력은 이성, 합리주의의 쇠퇴라는 문맥에서 이해돼야 한다. 기술발전과 성장, 물질적 충족 속에서도 우리는 끝내 행복하지 못하고 우울증과 자살, 폭력은 날로 늘어난다. 생로병사와 같은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다. 그런 선상에서 정신이 지배하는 긍정신화는 꽃을 피웠다. 에런 라이크가 불쑥 내민 이 책에 우린 순간 움찔한다. 이성적인 우리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갔는지, 긍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강한 정신, 우주적 정신과 달리 얼마나 쉽게 휘둘리고 취약한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