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등 혁명적 발명은
사회적 자산에 기댄 빚
과학·기술지식은 공공유산
소유권·분배 공정성 고찰
이익공유제 논란 와중에
한국사회에도 큰 시사점
“내가 번 것 중에 아주 많은 부분은 사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워런 버핏이 엄청난 자산을 기부하면서 한 이 말은 지금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부와 소유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중심에 서게 됐다. 개인이 노력해서 거둔 소득에는 기술과 지식의 축적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적 공동자산이 있다는 게 경제학의 새로운 인식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는 미국 경제학에서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던 미스터리를 푼 것으로 유명하다. 1929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이 이뤄낸 놀라운 경제성장과 높은 국민소득은 80%가 X의 덕이라는 사실이다. X는 다름 아닌 기술 지식의 축적물, 지식진보, 체화된 지식을 말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여겨지는 성과의 대부분이 실은 과거지식이 물려준 불로소득이라는 얘기다.
부의 집중화 현상은 지식경제시대에 노골화됐다. 미국 최고 부자 1%가 모든 개인들이 소유한 투자 자산의 절반을 소유하는 현실, 양극화의 심화가 새로운 인식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알페로비츠와 데일리는 과거의 지식유산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추적하며 소유권에 대한 일대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경제성장을 견인한 많은 과학적ㆍ기술적 지식들이 실은 공동의 유산이란 주장은 따지고 보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개인 혹은 기업이 하기 힘든 연구개발(R&D)들이 공공부문 투자 형태로 예나 지금이나 쏟아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밝음과 어둠을 순간적으로 연출하는 스위치처럼 인식의 전환 문제다. 저자는 이런 사례와 실증적 연구들을 제시하며 지식의 역할과 사회적 의미, 재분배와 평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탐색과 제안은 단순히 좌우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사상적 기반과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하며 부의 재분배를 현실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선도적이다.
저자는 공적 투자로 인한 기술개발 세목들을 일일이 열거해 나가며 사적 소유에 숨겨진 사회자산의 목록들을 명기해 나간다. 미국의 경우, 지식생산의 가장 큰 투자자는 공공부문이다. 2004년 미국에서 수행된 모든 기초연구는 연방정부기금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반도체와 반도체를 이용한 전기장치들, 집적회로, 컴퓨터, 원자력, 통신위성, 마이크로웨이브 전기통신과 항공교통 통제 같은 레이더 응용장치 등에 투자됐다. 특히 2003년까지 연방정부는 컴퓨터 과학에 총 20억달러 이상을 지원, 컴퓨터 기술의 눈부신 도약을 견인했다. 생명공학, 농업경제, 우주항공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사상적 기반으로 새로운 분배시스템을 위한 지식 상속이론, 고전학설, 자유지상주의자에서부터 진보적 사상가, 사회 경제와 정치사상의 광범위한 학설을 아우른다. 이들은 진보를 달리 본다.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발명이 이뤄낸 뛰어난 공헌의 연속이라는 전통적인 영웅관적 진보론에서 벗어나 기술의 발전은 점증적이고 누적적으로 발전하며 특별한 순간, 비약적 발전이 필연적으로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가령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우리는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로 기억하지만 엘리샤 그레이와 안토니와 메우치도 벨과 동시에, 심지어는 그보다 먼저 그 지점에 도달했다. 즉 비약적 발전은 천재 한 사람의 엄청난 공헌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지식의 역사적 전개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우리의 기술 유산이 지닌 도덕적 의미는 무엇인가에 닿는다. 우리가 가진 부의 상당 부분이 과거의 공짜선물이라면 누가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에 대한 지적 논의는 짧지 않다. 가장 일반적인 구분법이 근로소득과 불로소득으로 나누는 것으로, 기본적인 주장은 단순히 토지 소유로부터 파생된 부는 개인이 진실로 ‘근로’를 통해 획득한 부가 아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인식이다. 리카도의 ‘차액 지대’이론, 존 스튜어트 밀의 ‘외부가 가져다준 부’ 또는 ‘외부 상황에 의해 창조된 부’ 등의 개념이 등장한다. 미국 공화주의 저술가 토머스 페인은 처음으로 폭넓은 의미에서 부를 사회적 이론과 접합시켰으며, 20세기 초반 레너드 홉하우스는 “성공한 기업인이라도 문명 덕택에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총체적 지성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단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노벨수상자들 역시 이런 사상의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리처드 포스너, 프랭크 나이트에 이어 허버트 사이먼은 “우리가 자신에게 매우 관대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소득의) 5분의1 정도가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사회공유 자산과 지식유산에 따른 재분배 프로그램 등의 용어는 아직 낯설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삐걱거림도 그런 저항의 신호로 해석된다. 분배현실을 둘러싼 새로운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