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패션메이커들이 그를 잡기위해 자가용 제트기까지 띄운다는 사진작가 파울로 로베르시(Paolo Roversi, 64). 그가 서울에 왔다. 이번엔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시를 열기 위해서다.
로베르시는 (주)제일모직이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 중인 패션편집매장 ‘10꼬르소꼬모’의 3주년 기념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초대돼 사진전을 꾸몄다. 10꼬르소꼬모 빌딩 10층에 특별히 조성된 갤러리에는 로베르시의 작업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는 사진들이 다양하게 내걸렸다. 즉 그가 사진집으로도 이미 선보인 바 있는 3가지 주제 ‘누디(Nudi)’ ‘리브레또(Libret to)’ ‘스튜디오(Studio)’의 주요작이 일제히 나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로베르시는 예리한 눈빛을 빼곤, 지극히 편안하고 다정다감했다. 그는 “인물을 찍을 때 그 사람의 표면이 아니라, 내부의 영적인 부분을 끌어내는데 힘을 쏟는다“고 밝혔다. 즉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면, 심연을 찍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로베르시는 스티븐 마이젤, 피터 린드버그와 함께 ‘현존하는 세계 3대 패션사진작가’로 불린다. 그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꼼 데 가르송’의 대표디자이너)와 요지 야마모토, 로메오 질리 등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들과 작업했다. 또 세계적인 배우 이자벨 아자니, 모니카 벨루치, 니콜 키드만과도 일했다.
왜 누드를 많이 찍느냐는 질문에는 ”아름다움과 신비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누드는 여성의 감수성을 매혹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순수한 아름다움과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배우 중에는 김희선, 송혜교와 작업했던 그는 ”두 배우들과의 만남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만남이었다“며 ”모델과의 사진작업은 필름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새겨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여러 점이 나왔듯, 로베르시는 8×10인치의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유명하다. 사진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달 중임에도 그는 클래식한 폴라로이드 사진을 고집한다. ”1980년, 이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그 매력에 푹 빠져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며 ”예측하지 못했던 우연적 상황을 초래하는 불명확성이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즉 폴라로이드로 찍으면 흔들리기도 하고, 흐릿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그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것. “실수가 나왔을 때에도 고치거나 변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다“며 ’Why not?’이야말로 자신의 작업의 중요한 철학이라고 토로했다.
사진계에서 그는 ‘안티-테크니컬(Anti-Technical)’로 분류된다. 이에 대해 로베르시는 ”기술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사진의 기본은 기술이니까. 그러나 난 사진을 신비로운 측면에서 접근하는 편이다. 사진은 새로운 현실을 밝혀주는 도구라 생각한다“며 ”흔하지 않은 모습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모델의 사진이 도드라지게 들어온다. 요지 야마모토의 1985년 패션을 촬영한 사진으로, 모델은 영국계의 샤샤 로버슨이다. 당시 로베르시는 키가 유난히 큰 샤샤를 어떻게 촬영하면 좋을지 무척 난감했는데 때마침 자신의 조수가 펠리니감독의 영화음악(작곡 Nino Rota)을 틀어줘 갑자기 발동이 걸렸고, 이후 미친듯 촬영했다고 소개했다.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파리 포르트가에 ‘루체’(luce, 빛)란 문패를 달고, 스튜디오 작업을 고집하는 그는 ”어릴 땐 시도 쓰고, 연극도 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스페인여행 중 사진을 찍었는데 이젠 사진과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며 밝게 웃었다. 전시는 5월 8일까지. 19세 미만은 관람할 수 없다. (02)3018-1010 사진제공=Paolo Roversi, 10꼬르소꼬모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