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41), 이서현(38) 씨가 각각 신라호텔 사장, 제일모직 부사장에 오르며 경영 전면에 나선데 이어, 이번엔 홍라희(66) 여사가 삼성미술관 리움(Leeum) 관장에 취임했다. 지난 2008년 4월 삼성 특검으로 물러난지 근 3년 만이다.
홍 관장의 복귀는 남편 이 회장이 지난해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할 무렵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시기를 조율 중’이란 말이 파다했고, 마침내 ‘코리안 랩소디’라는 대형전시의 개막(16일)에 맞춰 조용히(?) 복귀했다. 미술관측은 29일 “일본 대지진 참사 등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별다른 공식행사 없이 복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 관장이 복귀한 작금의 미술계는 뒤숭숭하기 이를데 없다. 오리온, 부산저축은행 등의 비자금 사건에 미술품이 ‘핵’으로 등장한 데다, 신정아 씨의 폭로성 책 출간 등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그 어느 때보다 따갑다. 미술품을 ‘가진 자들의 은밀한 향유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 것. 미술시장 또한 여전히 침체를 거듭 중이다. 복귀시점이 매우 고약(?)한 셈이다.
미술잡지 ‘아트 프라이스’가 매년 설문을 통해 뽑는 ‘미술계 영향력 1위’에 오르곤 했던 홍 관장은 명실상부한 ‘한국 미술계 최고의 파워인물’이다. 해외에서도 ‘마담 홍’의 명성은 자자하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갤러리 이사회 회원이며,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회장, 한국메세나협의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또 재계 안주인들에겐 가장 닮고 싶은 표상이기도 하다. 지난 1995년 남편 이건희 회장의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말고, 앞에 나서서 제대로 해보라“는 말에 호암미술관 관장에 취임한 홍 관장은 삼성의 미술사업 전반을 이끌며 재계 안주인의 ‘롤(role)모델’이 됐던 것.
홍 관장은 또 연령고하를 떠나 ‘가장 스타일리시한 여성’으로 꼽히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손잡고 보여주는 일명 ‘공항패션’과 삼성의 공식, 비공식 행사에서 보여주는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은 언제나 화제가 되고 있다. 일거수 일투족이 늘 관심의 대상인 것.
그러나 그가 이같은 찬사에 머물러 있는 한 리움은 발전이 없다. 미술계 영향력 1위, 세계가 알아주는 ‘미술 퀸’의 찬사에 버금가는, 또 한국 최대의 사립미술관의 수장으로써 과거와는 다른 행보와 역량을 보여줘야 할 때다. 게다가 세계는 요즘 ‘기술력은 거의 평준화되고, 창의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만큼 리움이야말로 ‘혁신적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용광로’가 돼야 한다. 국내외 명품(예술품)을 모아 우아함을 한껏 뽐내는 데서 그쳐선 안되는 것.
아이폰, 아이패드 등 일련의 애플 제품이 내뿜는 ‘말로 표현키 힘든 무형의 매력’을 삼성이 따라잡기 급급한다는 지적이 여전히 많은 현실에서, 삼성의 ‘창의력 전진기지’인 리움을 다시 맡은 홍 관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물론 15년 가까이 미술관 관장을 역임했으니 전문가임엔 틀림없지만 3년의 공백을 깨고 복귀한만큼 전과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선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임에도 리움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안전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비판 또한 적지 않다. 실험성과 공공성에서 다소 취약했다는 것.
따라서 앞으론 보다 진일보하고, 신선한 것을 보여주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삼성의 ‘상상력의 원천’인 리움이 제대로 작동하고, 멋지게 뻗어나가야 우리 사회 전반에 참신한 비전과 아젠다가 확산될 것이니 말이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