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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블미’ 가장 윤은혜스러운 배역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감독 허인무)를 보다보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생각나고 ‘고양이를 부탁해’도 떠오른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배두나와 ‘마블미’의 윤은혜는 닮은 점이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좀 더 마이너적 감성을 담고 있다면 ‘마블미’는 조금 더 주류쪽으로 가 있다.

20대 미혼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담은 ‘마블미’에는 입학식때 검정색 옷을 입고와 친해진 명문대 연극영화과 학생 유민(윤은혜), 혜지(박한별), 수진(차예련), 민희(유인나) 4총사가 우정, 질투, 가족, 사랑, 취업 등을 놓고 때로는 갈등을 벌이고 함께 고민하면서 성장해나간다.

학교 다닐때는 만만하게 보였던 세상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절감하면서 한단계 성숙해지는 이야기다. 쌓아놓은 스펙이라곤 몇 번의 연애와 클럽생활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배우의 4인 4색 캐릭터가 돋보이지만 윤은혜는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중 가장 잘 어울린다. 엄마 덕에 방송국 보조작가로 일하게 된 유민은 외모 연예 취업 모두 2% 부족하다. 사회생활의 높은 벽을 느끼고 엄마에게도 “그럼 혜지처럼 예쁘게 낳아 주던가”라며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임을 느낄 수 있다.

윤은혜는 첫 영화인 2006년작 ‘카리스마 탈출기’에서 터프한 남자 같은 역할로 나왔지만 외면받았다. 하지만 ‘마블미’에서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해 만들어간 캐릭터라 썩 잘 어울린다. 윤은혜는 외모도 경제력도 연애도 조금씩 부족하면서도 아둥바둥 애쓰지만 결국은 잘못된 꿈을 꾸고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는 여자를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한다. 그래서 일상적이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윤은혜는 드라마에서도 ‘궁’ ‘커피 프린스 1호점’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나갔다. 발음과 관계된 연기 논란도 간혹 있었지만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하면서 차근차근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이제 점점 자신의 이미지를 캐릭터에 녹일 줄 알고 자연스러운 연기에도 눈을 떠가는 느낌이다. 자신의 회사(더하우스컴퍼니)에서 자신이 결정한 배역이라 더욱 자기만의 이미지를 쌓아나가기 좋을 것으로 보인다.

‘마블미’는 타고난 외모와 쿨한 성격으로 혜지가 먼저 스타덤에 오르게 되자 친구들 사이에서 묘한 질투심이 생기면서 그녀들의 우정에도 금이 가게 된다. 밝고 비교적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의 국면 전환이다.


박한별은 실제로 고교 졸업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면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던 전력 덕분인지 혜지 역이 잘 어울린다. 그동안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던 박한별은 자신의 옷을 입은듯이 제법 편안해졌다. 박한별은 시사회후 가진 인터뷰에서 “갑자기 연예계로 들어오면서 (영화의 내용처럼) 원래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머리 좋고 자존심 강한 차도녀 수진은 노력 없이 클럽에서 CF감독 눈에 띄어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혜지에게 결국 폭발하고 만다. 수진에게 맥주병을(사실은 그 옆으로) 던지는 차예련은 감정의 진폭이 큰 수진역을 잘 소화한다.

집안이 부유하고 해외파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민희 역의 유인나도 4총사의 분위기 메이커로 자연스레 녹아든다.

20대 여성의 성장드라마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25살은 꿈꾸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내 삶의 중심에 있다”는 윤은혜의 마지막 대사가 적당하다. 실제로도 20대에 후련한 일은 없지 않은가.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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