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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대지진>화려한 신주쿠의 밤은 어둠속에…커지는 핵공포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로 인한 일본의 전력난이 도쿄의 중심부 신주쿠의 밤풍경을 바꿔놓았다.

하루 유동인구가 400만명에 달하고, 초대형 백화점과 가부키쵸(歌舞伎町)의 휘황찬란한 네온시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신주쿠는 일본 정부의 도쿄 전역 대규모 정전 예고가 나온 17일 저녁 짙은 어둠에 묻혀버렸다.

이날 하루 도쿄 거리는 한산했고, 운행하는 자동차가 줄어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신한은행 일본 현지법인 SBJ가 있는 ‘테레비 도쿄’ 빌딩에서 신주쿠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에게 교통 상황을 묻자 그는 “원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로에 자동차가 현저히 줄었다”고 전했다. 신주쿠에 거주하는 구성규(34ㆍ직장인) 씨는 “절전에 들어간 뒤로 밤에 문을 닫는 가게가 많이 늘었다”며 “거리가 썰렁해지니 신주쿠를 찾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센다이 후쿠시마 등 대규모 피해지역은 물론이고, 도쿄 시민들도 시간이 갈수록 방사성 물질 오염 우려, 정전, 생필품 부족, 대지진의 여진 등 4중고에 노출돼 있다. 이날 밤 9~10시 사이에도 2번의 지진이 발생해 건물 전체가 약 1분간 좌우로 흔들렸다.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다행히 이날 대규모 정전사태는 없었다. NHK는 “전철이 평소의 80% 정도만 운행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 참여로 최악의 정전사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점점 커지는 방사능 공포=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은 일본인들은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로 방사성 물질 오염 우려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마스크를 낀 사람 숫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특히 여성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SBJ 전필한 부장은 “결혼하고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원전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생필품 부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웬만한 편의점에서 마스크는 품절이었고, 진열장에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데가 많았다. 도쿄 시내 주유소에서도 차량들이 기름을 넣으려고 300m 정도 줄을 서는 것은 보통이었다.

간간히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신주쿠에서 한 여성은 마스크를 착용한 기자가 한국인임을 눈치챈 듯 갑자기 옆으로 다가와 “ 큰일이죠(大変ですね). 이게 다 정치인들 때문이에요”라고 말하곤 걸음을 재촉했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 언론의 헤드라인은 일부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이 장식하고 있었다.

▶한국영사관ㆍ민단, 북새통 = 한국영사관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위치한 건물은 하루 종일 붐볐다. 비자, 여권 등을 발급 받는 창구에는 한국행을 서두르는 인파로 가득 찼다. 유학생 박세용(31) 씨는 “여권 재발급 신청을 했는데 업무가 밀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출국 날이 내일인데 여권 발급이 안 되면 어렵게 구한 항공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발을 굴렀다. 3시간째 비자발급을 기다리고 있는 재일동포 박순철(43) 씨는 한국에 연고조차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친구 한명 없지만, 상황이 워낙 급하니 우선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피신하려 한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한국영사관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민단 역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민단은 지난 12일부터 대책본부를 꾸리고 재일동포 지원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강우석 민단 조직국장은 “일본에서 지진 피해자ㆍ사망자 명단 등을 발표하지만, 그 중 재일동포를 구별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며 “민단 조직을 통해 자체적으로 인적ㆍ물적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후쿠시마 등 통제 지역이 늘고 있어 민단 역시 지원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 국장은 “우선 가장 급한 센다이 지역에 봉고차 2대를 이용해 물, 이불, 휘발유 등 긴급물품을 전달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민단 사무실 구석에는 물과 이불 등 피해지역으로 보내질 구호물품이 쌓여 있었다. 그는 “일본 내 한국기업에서도 물품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재일동포의 피해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코트라(KOTRA) 등도 전력 통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을 지원하는 데 하루가 모자를 지경이다. 단전으로 일본의 핵심소재 부품회사와 거래하는 한국기업들의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기업 관계자는 “업계 분위기를 보면 전력 통제로 제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들이 사실상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고, 그 여파로 부품 공급을 받지 못하는 국내 기업까지 2차, 3차 피해가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부 현지인들도 주말 도쿄탈출 동참 =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불안감을 느낀 일본인들의 도쿄 탈출 움직임도 일부 감지됐다. 유키 덴(31ㆍ회사원) 씨는 오는 주말 도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그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고, 아침마다 방사선 수치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악화되다 보니 국민들 사이에 유언비어도 늘고 있다. 그는 “일본인이 침착하다는 말만 믿어선 안된다. 피해 지역에서 약탈 사건이 빈번하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인 타카히로 사사키 씨는 “트위터, 인터넷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최대한 모으고 있다. 도쿄를 탈출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판단이 잘 안 선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에서 온 구조대원의 활약이 크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배용준 등 한류 스타의 성금이 이어진 것도 일본인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도쿄=신창훈 특파원/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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