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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대지진>방사능 공포...하네다공항 일본탈출 러시
17일 0시. 도쿄 하네다 공항은 밤을 잃었다.

항공편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인 데도 도쿄를 떠나려는 외국인들로 붐볐다. 혼잡하지는 않았지만 3층 출국장에선 빈의자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옷가지를 깔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공항 안내소 안내원은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 우려로 평소 때보다 많은 고객이 새벽시간에 공항에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에 몰려든 외국인들 중에는 출국 3~4일 전부터 와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진과 방사성 물질에 대한 불안감으로 공항에 피신해온 것이다.

인천행 항공기가 없었지만 한국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출국장 로비에 앉아 PC로 한국 관련 동영상을 보고 있던 김유나(23) 김루비아(20) 자매는 출국이 오늘(17일) 오전이었는데 14일부터 공항에 나와 노숙을 하고 있었다.

언니인 김유나씨는 “동생이 도쿄 시내 대학에 입학하러 온지 2주일 만에 대지진이 났다”면서 “충격을 받아 밥 못먹고 잠도 못자 걱정이 컸는데 14일부터 도쿄에 부분 정전이 시작돼 아예 공항에 나와 버렸다”고 했다. 김씨는 휴대폰으로 찍은 여진 동영상과 도쿄 시민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편의점에 물려들어 생필품을 사는 모습의 사진을 보여주며 “일본 사람들도 시간이 갈수록 정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인의 무서운 자제력이 놀랐다고 했다. 지난 14일부터 도쿄에서도 부분정전이 시작되면서 편의점이나 수퍼마켓으로 양초 건전지 컵라면 등 생필품을 사러 몰려들어 물건이 금방 동이 났지만, 한 사람이 꼭 필요한 만큼만 사는 모습에 ‘자제력이 대단하다’ 느꼈다고 했다.

도쿄 탈출 행렬은 새벽에도 쉼 없이 이어졌다. 발권 창구 직원은 이미 퇴근했고, 청소부는 쓰레기통을 비우기 시작했다.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출국장 한켠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조용했다. 무거운 침묵 속에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이원석(30) 씨가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17일 새벽 1시. 이씨는 어렵사리 구했다며 가방 안에서 빵과 음료수를 꺼내 보였다. “기다리다 보면 하루라도 빨리 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공항으로 왔어요. 도쿄 안에서도 편의점마다 음식이 텅 비었습니다.”

이씨는 발권창구 인근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며칠 밤을 보내게 될 지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겨우 구한 항공권의 출국 날은 20일. 최악의 경우 4일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 이씨는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고, 집에 있는게 불안해서 일단 공항으로 왔다. 기다리다 보면 항공권 한 장 구하지 못하겠냐”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최근 며칠은 이씨에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그는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수시로 건물이 흔들거릴 강도의 지진이 이어졌다. 통신 상태가 불안정해 인터넷 전화로 부모님과 연락을 취하곤 했다”고 전했다. 비상식량으로 챙긴 빵과 음료수를 보여주며 말했다.

“식료품점에 가면 줄을 서도 음식을 구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한인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현지 식당도 점심만 운영하고 있으니 공항 사정이 어떨지 몰라 우선 되는대로 챙겨왔어요.” 이내 피곤한 듯 이씨는 모자를 눌러쓰고 잠을 청했다.

구성규(34ㆍ직장인) 씨와 이규호(32ㆍ대학생) 씨도 새벽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다행히 18일에 출국하는 항공권을 구했다. 구씨는 “평상 시보다 2배 넘는 가격을 주고 표를 구했다”며 “항공권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가격이 너무 비싸니 주위 한인 친구들도 쉽게 귀국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지진을 감지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줬다. 그는 “오후 10시 30분 이후만 해도 여진이 30여차례 발생했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들은 각각 도쿄 신주쿠, 닛포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씨는 6개월 단기 어학연수를 계획했지만, 3개월 만에 돌아가야 한다. 남은 학비, 숙박비 등을 돌려받을 길도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급하게 문의했는데 학비를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어렵게 준비한 어학연수인데 허망하게 끝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게 일본에서 직장을 얻었다는 구씨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는 “현지에서 직장을 구한 이들에게 귀국이 곧 직업을 포기한다는 의미”라며 “겨우 일본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귀국과 함께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부모의 성화와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으로 겨우 결심을 굳혔지만, 귀국길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구씨는 “출국 문제 때문에 입국관리소에 갔는데 5000여명이 몰려 7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인파가 몰린 탓에 비자갱신을 받지 못해 출국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한인도 많다”고 전했다.

유럽인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인인 사라 기슬레니(22) 씨는 “일본어 전공으로 2개월 과정 연수를 왔지만 2주만에 돌아가게 됐다”며 “이미 많은 국가의 대사관에서 자국민들에게 일본을 떠나라는 권고가 내려오고 있어 귀국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트레이시 코이데(38ㆍ여) 씨는 일본에서 11년째 거주했다. 그는 “2살된 아이가 있어 출국을 결심했다. 발전소 폭발이 이어질 때 표를 예약했고, 원전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대응을 믿을 수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발권 창구 인근에는 책상 하나에 영국 대사관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영업한다는 안내판 옆에는 ‘도쿄와 인근 지역 방문을 최대한 자제해달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긴급 상황을 대비해 이름, 전화번호, 여권번호를 적어달라는 종이가 일본의 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기자는 16일 오후 9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들어왔다. 300인승 비행기에는 55명만이 탑승했다. 그 중 한국인은 4명 뿐. 나머지 인원 대부분은 고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는 일본인들이었다. 한국에서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한 승무원은 “승무원 사이에서도 일본행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어제부터 일본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인원이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새벽 1시 30분. 하네다공항에서 기자가 묶을 도쿄 신주쿠 호텔까지 가는 대중 고통편은 모두 끊겼다. 택시를 타고 도쿄 신주쿠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일본 대지진에 한국인들도 슬퍼하고 있다”고 말을 건네자 운전기사는 “일본과 한국은 과거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주변 송전선이 곧 복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전기가 정상화되면 방사능 물질 유출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이날 아침 도쿄의 중심부인 신주쿠에서는 출근을 서두르는 일본인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진 마크스를 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쿄=신창훈 특파원/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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