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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항제 선임기자의 이슈 프리즘>‘왕회장’ 10주기 추모 斷想
도전과 모험정신의 대명사이자 한강의 기적에 초석을 다진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추모 행사가 ‘조촐하지만 뜻깊게’ 치러진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회장 특별 지시로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해상 아산재단 등과 함께 10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과 전국 사업장에서 추모 사진전을 공동 개최한다. 14일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로 추모 음악회도 연다.

‘이봐! 해봤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고인의 명성과 현대차그룹 위상과 달리 거창하고 시끌벅적하게 추모 행사를 치르지 않는 점이 신선하다. 2001년 3월 21일 별세 당시에도 사회장(葬)이나 경제5단체장, 현대그룹장 대신 노제 없는 ‘5일 가족장’을 치른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장작값을 아끼려 저녁 한때만 불을 지피고, 구두를 오래 신으려 뒷굽에 징을 박아 신었던 아산의 근검절약 정신을 배려한 조처로 이해한다.

범현대가(家)의 화합 가능성은 현대와 현대차는 물론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징조다. 범현대가는 그동안 제사만 같이 지냈을 뿐 경기 하남시 창우리 묘소 참배 등은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건설 등 계열별로 따로따로 치러왔다. 정몽구 회장만 해도 왕자의 난, 시숙의 난 등으로 한동안 제사 참석마저 기피했을 정도다.

하지만 금년엔 다르다.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던 제수 현정은 현대 회장에게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 카드를 주더라도 범현대가 화해에 방점을 찍으려는 시아주버니 정 회장의 통 큰 시도가 읽힌다. 현 회장도 정 회장 초청을 애써 외면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재동과 계동 분위기도 괜찮다.

10년 만의 ‘왕회장’ 귀환은 범현대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재산분할 문제 등으로 등진 D, H, K그룹 등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무엇보다 선진국 도약을 꿈꾸는 후손들에게 한국형 기업가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정 명예회장 관련 에피소드는 이루 열거하기 어렵다. 부산 유엔군 묘지 조성, 경부고속도로와 울산 조선소 건설, 서산 간척지 물막이 공사, 사우디 주베일항만 공사 수주와 철구조물 바지선 수송, 자동차 시장 진출, 88올림픽 유치, 소떼 501마리 방북 등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한국 경제 신화를 다시 썼다.

현대건설 진출을 시작으로 자동차 조선 해운 전자 증권 등 스스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신사업 성공 시리즈는 도요타경영 두바이경영 스타벅스경영 애플경영 등과 차원이 다르다. 리더십 역시 잭 웰치, 스티븐 코비, 피터 드러커, 짐 콜린스 등 세계적 경영 대가들을 뛰어넘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단순히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에 앞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지혜를 모으는 소통의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이홍구 10주기 추모위원장(전 국무총리) 평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이익에 머물지 않고 국가경제를 생각하는 혜안은 경외에 가깝다.

“기업은 국가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기업이 발전해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나라의 모든 분야가 발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인은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기업 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기업이란 자유경쟁체제에서 경쟁을 함으로써 생명력을 갖고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독점적인 위치에서 보호를 받고 성장한 기업은 국제경쟁사회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정부는 유효경쟁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조성하고 경제활동을 유도, 산업분야는 민간기업인의 자유경쟁원리에 일임하는 방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30~4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어쭙잖은 사회주의적 초과이익공유제를 추진, 되레 기업인 사기를 꺾으려는 정부와 정치권 등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천민자본주의에 집착하는 일부 기업가에 대한 쓴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나 자신을 자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는 자평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다시 모바일로 변했지만 근검절약, 창조경영, 도전정신, 국가 발전과 민간주도경제 등을 설파한 ‘정주영식 경영’은 여전히 유효하다.

yes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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