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서 첫 반정부 시위
“국민들 배고픔에 고통
카다피 父子만 흥청망청”
비판 유튜브 나돌기도
아들에 권력세습도 준비
北 김정일 반면교사될수도
“다음 차례는 카다피다.”
아랍ㆍ아프리카의 민주화 물결이 현존하는 세계 최장기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69)의 철옹성 리비아에 마침내 당도했다. 리비아와 서북쪽 국경을 맞댄 튀니지에서 시작된 이번 시민혁명으로 23년 장기독재자 지네 알 알비디네 벤 알리가 물러나더니 리비아와 동쪽 국경을 맞댄 이집트의 30년 철권통치자 호스니 무바라크도 맥없이 쓰러졌다. 알제리와 예멘, 이란, 바레인, 요르단 등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혁명의 불길은 리비아를 사방으로 에워쌌고, 그간 별다른 움직임이 관측되지 않던 리비아에서도 지난 15일(현지시간) 밤 최초로 반정부 구호가 터져 나왔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일어난 이날 시위는 한 인권변호사의 경찰 연행으로 촉발됐다. 1996년 아부살림 교도소 학살사건의 희생자 변호를 맡았던 페티 타르벨이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로 이날 체포되자 희생자 유족들이 경찰서로 몰려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후 타르벨 변호사는 풀려났지만 시위대열엔 어느덧 시민 수백 명이 가담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동의 시민혁명이 자국에 당도할 것을 두려워한 리비아 지도부가 요주의 인물들을 미리 잡아들여 사태를 차단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것이 리비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고 보도했다.
리비아의 시민혁명이 인근 중동 국가들보다 의미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42년간 권좌를 지켜온 독재자 카다피 때문이다. 리비아에서 ‘왕 중 왕’으로 불리는 그는 1969년 친서방파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외국여행을 떠난 틈을 타 쿠데타를 감행해 권력을 잡은 뒤 의회와 헌법을 폐기하고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47년간 통치하다 동생 라울에게 정권을 이양한 것처럼 카다피 역시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에게 권력승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리비아의 독재권력은 대를 이어 세습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정권 안팎에서 불만이 불거지면서 카다피의 절대권력에도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률도 북아프리카 최고 수준이다.
포린폴리시는 무바라크에 이어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독재자 5인 명단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카다피를 나란히 꼽기도 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집트 이후 붕괴 위험이 높은 국가에 리비아를 6위로 꼽으면서 “소셜미디어 사용비율이 20%만 된다면 가장 먼저 붕괴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전체 인구의 47.4%를 차지하는 25세 이하 청년층의 사회적 불만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유튜브에는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 한 리비아 누리꾼이 만든 ‘이제 그만 리비아(Enough Libya)’라는 동영상은 “국민들이 배고픔, 가난으로 고통받을 때 카다피는 편히 살고 아들들은 벌거벗은 여자들과 술파티를 벌였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15일 시위가 있기 전부터 알 바이다 지역에서 시민 수십 명이 반독재 구호를 외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나돌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17일을 ‘리비아 분노의 날’로 명명하고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민주화 시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기세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