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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장인의 한땀…‘지젤’ 낭만을 말하다
일흔의 디자이너가 낭만을 이야기한다. 깊은 주름과 하얗게 샌 머리는 왠지 낭만주의와 어울린다. 그가 한땀 한땀 새겨넣는 이탈리아 장인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낭만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지젤’이 파리오페라버전의 오리지널 안무로 한국에서 공연된다.

24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발레단의 ‘지젤’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유럽의 오페라와 발레 무대에서 명성 높은 루이자 스피나텔리가 맡았다. 그는 50년 간 다양한 안무가와 수십 편의 오페라와 발레를 함께 만들어왔다.

이탈리아에서 의상과 무대 디자인과 제작까지 마치고 14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무용수들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무대 제작소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5일 예술의전당 무대 뒷편 분장실에서 만난 루이자 스피나텔리는 ‘지젤’ 무대에 오를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에 대해 “목이 길고 부드러운 체형으로, 현대의 낭만주의를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는 무용수들”이라고 평가하며 “멋진 무용수들로 감동적인 공연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낭만에 대하여=발레 ‘지젤’은 1841년 6월 28일 파리오페라극장(가르니에 극장)에서 초연 후 낭만발레의 대명사로 뿌리 내렸다. 국립발레단은 이번 무대를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19세기 오리지널 로맨티시즘의 귀환’으로 준비했다. 그런 만큼 파트리스 바르 파리오페라발레단 부예술감독의 안무뿐 아니라 의상과 무대, 음악까지 낭만주의로 귀결된다.

프랑스 스태프의 참여에 이탈리아 장인들이 만든 무대와 의상을 들여온 이유다. 유럽의 오페라와 발레 무대 디자이너로 명성높은 루이자 스피나텔리는 이탈리아에서 직접 무대와 의상을 제작했다.
지난달 ‘지젤’ 제작발표회를 찾은 파트리스 바르 부예술감독도 “이번에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은 루이자 스피나텔리는 파리오페라발레단과 자주 작업을 했고 낭만주의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며 “의상과 무대가 19세기 전통을 잘 살려내 안무와 제대로 조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루이자 스피나텔리가 이번 공연을 위해 브란카토 의상 제작소에서 100벌이 넘는 ‘지젤’ 의상을 계획하고 디자인하는데만 4개월 정도 걸렸다. 디자인한 의상을 제작하는 데는 2개월 정도가 더 필요했다.
그는 의상실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분장실까지 차지한 발레 의상들을 직접 보여주며 낭만주의 발레 의상의 특징을 설명했다. 겹겹이 싸인 속치마들은 풍성하면서도 가벼움으로 다가오고 염색과 바느질까지 수작업으로 한 의상들엔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1800년대 초연 당시 ‘지젤’ 의상은 르네상스풍이었죠. 낭만주의는 달라요. 과장되고 부풀었던 것들이 사그라졌다고 보면 됩니다. 발끝으로 지탱되는 춤의 가벼운 느낌이 의상에도 반영된 거죠. 과장이나 과시 없이 단순하고 간소화되면서 날렵한 것이 낭만주의 발레 의상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2막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 때문에 죽은 처녀들의 영혼인 윌리들의 튀튀(클래식 발레리나가 입는 스커트)에도 그런 면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윌리들만 나오는 흰색 장면이죠. 죽은 영혼들이 움직이는 느낌을 투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러겹의 부드러운 망사천을 겹쳐서 만들었습니다. 의상의 가벼움은 무용수들이 몸을 움직이는 대로 옷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죠. 무대 역시 뒷편에서 빛이 들어오면 한결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전통에 대하여=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루이자 스피나텔리가 한 발레 작업은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뿐 아니라 ‘한여름밤의 꿈’ ‘라이몬다’ ‘코펠리아’까지 다양하다. 파트리스 바르와 함께 한 작품만해도 ‘호두까기 인형’을 포함해 다섯 작품에 이른다. 그런 만큼 “19세기 원래의 버전에 가깝게, 그 정신을 살려내겠다”는 그의 안무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가면서 지켜가야 할 전통을 거듭 강조했다. “‘백조의 호수’를 올리는 한 러시아 안무가는 발레의 현대적인 변형이 싫어서 ‘원래 이 작품이 어떤 공연이었는가를 보여주고 싶다’며 함께 작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죠.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낭만주의 발레는 사라져선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을 가진 젊은 사람들에게도 이어가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어야겠죠.”

그는 이탈리아에서 제작해온 무대 작화 사진 파일을 보여주며 화가 파올리노 리브라라토가 그린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낭만주의 화풍을 소화해낼 수 있는 화가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에 안타까워 했다.
“요즘 발레 무대도 구성주의처럼 구조물 위주로 가고 있죠. 낭만주의 발레의 무대는 의상과 마찬가지로 가볍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지젤’ 역시 그런 느낌의 그림이 배경으로 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공연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다. 낭만주의 발레는 줄거리가 있는 공연이지만 말은 없다. 몸짓이나 의상, 그리고 줄거리에 따라 변하는 무대의 움직임과 조명의 변화로 이야기를 충분히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무의 각 대형들도 무대 디자인의 일부죠. 그런 기하학적인 형태들 하나하나가 공연의 구성 요소입니다. 무용수들이 기하학적인 대형으로 움직일 때 의상과 다리의 모습은 추상적인 느낌까지 주는데 그런 것이 낭만주의의 한 모습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으로도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지젤’에서 개인적으로 역동적인 1막보다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2막을 더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지젤’을 찾는 한국 관객들에게 “지젤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가장 드라마틱하지만 모두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며 “안무뿐 아니라 무대와 의상, 조명과 세트 전체에서 낭만주의 발레의 정수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donttouchme01>
hit@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국립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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