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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직 힘들고 가족생각에 우울”
그들이 말하는 남한생활의 명·암
초기 외래어 의사소통 불편

빈곤계층으로 전락 잇따라


공동생활과 다른 사회 낯섦

구직활동 번번이 좌절 경험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양강도 해산에 살던 김모(38) 씨는 배급이 중단되면서 탈북을 결심, 2005년 한국땅을 밟았다. 그러나 먼저 탈북해 몽골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지도 못하고 혼자 한국으로 왔다는 자책감에 시달려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김 씨가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5년 동안 살 길을 찾지 않은 것도 아니다. 주유소ㆍ전기부품공장 등 닥치는대로 일거리를 구하려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달에서 길어야 3개월이 고작이다. 지금은 안양시 동안구 임대아파트에서 무직인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북에 있을 당시 공동생활에 익숙하다보니 개인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사회시스템이 생소하고 낯설기 그지없다.

북한 체제의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가운데, 2만명에 이르는 남한 내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는 일은‘ 남북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시험대’라는 것이 전문가의 중론이다. 직업 능력이라는 시장 잣대보다는 그들이 적응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속 가능한 취업이 되도록 배려하는 포용력이 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탈북자들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헤럴드경제 사진DB]
중국ㆍ베트남ㆍ캄보디아를 거쳐 2003년 5월 부인, 처제, 두 딸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 온 황모(45) 씨는 처음 한국에서 외래어로 인해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허리디스크 골절로 직장생활을 못해 지금은 사단법인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지난해 4월부터는 ‘백두FC’라는 탈북자 축구동호회 회장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황 씨는 “주로 독신이 많아 주말이나 공휴일을 활용, 30여명이 축구를 통해 힘든 점도 얘기하고 같이 힘을 모으기도 한다”며 “축구가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말했다.

황 씨는 이 밖에도 매달 중랑노인복지관을 찾아 청소와 배식 등의 자원봉사를 하고, 석 달에 한 번 정도는 동호회 회원과 지역 탈북자가 갹출해 무료급식 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황 씨는 “경제적 문제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정착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활동을 통해 정신적으로 극복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탈북자가 빈곤 계층으로 전락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지원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향후 통일 한국에서 이들이 남북 화합의 밑거름이 되는 만큼 남한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정베드로 사무총장은 “당국은 탈북자가 북한에 정착금을 송금할까봐 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인색하다”며 “한꺼번에 많은 부분을 지원해서는 안되겠지만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섬세한 복지적 지원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10~20대는 괜찮은 편이지만, 40~50대는 취직 문제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한다.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며 “탈북자의 40~50%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들이 남한의 평균 소득까지 지원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탈북자의 노동의욕이나 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태에서 전폭적인 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자도 시장경제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정부의 묻지마 지원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며 “탈북자 지원 예산이 있다면 금전적이 아니라 직업교육이나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지원 정도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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