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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덧없던 30년 권력의 영광...현대판 파라오 무바라크 끝내 낙마.
30년 권력의 영광은 허무했다. ‘현대판 파라오’로 불린 호스니 무바라크(82) 이집트 대통령이 30년의 덧없던 영화를 뒤로한 채 지난 11일 끝내 낙마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힘은 끝내 역사를 바꾸고 말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영향을 받은 이집트 시민들의 시위가 대규모 벌어지자 오는 9월 치러지는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까지 선언했지만, 명예로운 퇴진을 바라던 그의 희망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국민의 퇴진 압박 속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공사를 졸업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무바라크는 1969년 공군 참모총장에 올라 이스라엘과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참패한 이집트 공군을 재건한 영웅이었다. 1973년 10월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 초기단계에서 이스라엘군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여 이집트의 전쟁영웅으로 부상했던 것.

무바라크는 이런 명성을 발판으로 1975년 안와르 사다트 정부의 부통령으로 임명됐으며, 1979년에는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부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사다트의 후계자 자리를 굳혔다.

아랍권 국가 중 최초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했던 사다트가 1981년 10월 이슬람주의자 장교의 총탄에 암살되자 당시 부통령이었던 무바라크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사다트의 암살 이후 불안정한 정국을 비상계엄법으로 통제했고, 이 비상계엄법은 현재까지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또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정권안보의 도구로 활용됐다고 이집트 야권 세력은 주장하고 있다.

무바라크는 여당 후보의 출마가 제도적으로 어렵도록 한 선거법을 바탕으로 5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30년간 권력을 휘둘렀으며, 2002년에는 차남인 가말을 집권 국민민주당의 핵심 요직인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임명, 부자간 권력세습을 위한 수순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민주화 시위의 결정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불명예스런 낙마를 겪은 그지만 나름의 공적도 있다. 국내 정치에서 독재 권력을 휘둘러왔던 무바라크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체결로 아랍연맹에서 퇴출된 이집트를 1989년에 다시 가입시키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등 중동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독일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고 나서 한때 건강 이상설에 휘말렸던 무바라크는 82세의 고령에도 주변국뿐 아니라 미국까지 방문하는 국외순방 일정을 소화하며 건재를 과시했으나 연초부터 튀니지에서 불어온 민주화의 폭풍에 좌초하고 말았다.

무바라크의 낙마로 이집트는 향후 차기 지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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