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다가왔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과 오순도순 나누는 대화 속에 따뜻한 설날을 보내고 있지만, 모든 이들이 웃음꽃으로 설날을 지내는 건 아니다.
결혼 압박에 고향길을 포기한 노총각ㆍ처녀들, 다가오는 공채 시즌을 앞두고 준비에 여념 없는 취업준비생들, 구제역 때문에 서울에 머물기로 결정한 이들 등 외로운 설을 맞이하는 사연도 각양각색. “문 연 밥집 하나 없다”며 한숨을 쉬는 이들의 사연을 엿봤다.
▶“친척들 떠난 뒤 살짝 내려갈까?” 노처녀ㆍ총각들의 고민 = 김지선(여ㆍ가명ㆍ37) 씨는 올해 설날 역시 기차표 예매를 앞두고 수차례 망설였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가보고픈 맘이 가득하지만, 가족은 물론, 친척마다 빠짐없이 건네는 “결혼 안하냐”말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고민 끝에 김씨는 설날 당일날 내려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친척들이 돌아간 이후 슬쩍 집에 도착하려는 전략이다. 김씨는 “어머니께 슬쩍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마저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라”며 “부모님마저 막상 늦게 내려오라고 하니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6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이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결혼은 안하나’가 30.1%를 차지, 1위로 꼽혔다. 김씨는 “친척들이야 각자 한 번씩 건네는 말이지만 듣는 처지에선 수십 번 듣게 된다”며 “노처녀 스트레스가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취업이 고향길보다 더 큰 선물이죠”, 취업 준비생에겐 설도 없다! = 이모(31ㆍ취업준비생)은 상반기 공채 시즌을 앞두고 고향길을 포기했다. 졸업 전후로 행정고시에 수차례 고배를 마신 뒤 지난해부터 기업 취직으로 눈길을 돌린 이씨. 올해 설 연휴는 대학 독서실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취업에 성공해서 부모님 선물 사들고 가기 전까진 취업 준비에 매진하기로 했다. 독서실이 한가할 테니 더 공부도 잘되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씨의 가장 큰 고민은 ‘끼니 해결’. 대학 인근 저렴한 밥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곤 했던 이씨는 설 연휴 문을 연 밥집이 없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는 “지난 추석에도 서울에 남아 있었는데 문을 연 밥집이 없어 고생했었다”며 “나와 같은 취업준비생을 위해 설날에도 어김없이 문을 열어줄 ‘고마운’ 식당이 절실하다”고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사람인의 같은 설문조사에서 구직자들이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취업은 했니’가 27.6%를 차지해 1위로 꼽혔다.
▶구제역으로 귀향 자제? “모두가 동참해야죠” =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고자 구제역 창궐 지역에 방문 자제를 요청하면서 이들 지역을 고향으로 둔 귀성객들도 귀향 자제에 나섰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향우회 및 친인척을 통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한 상태다. 축산단체도 호소문을 발표하며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축산단체 관계자는 “구제역이 일단 발병되면 피해가 큰 만큼 아쉽지만 이번 설에는 귀향을 미뤄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축산농가의 가족들은 물론,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해주고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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