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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국민들이 잔뜩 골이 났다는데…
월급 1억원이 관행?

그래서 억울하다고?

정작 국민들이 골났는데

대통령이 더 삐졌다니…


“요즘 들어 부쩍 억울함, 분노 같은 게 밀려들곤 하는데,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 나이 탓인가.”

가까이 지내는 ‘형님’ 한 분이 소주잔을 앞에 놓고 푸념처럼 던진 말이다. 그 억울함과 분노는 딱 이거다 하고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 뭔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배신감과 박탈감이라고 할까…. 그는 성실하고 근면한 대한민국 보통 국민이다. 그런데 골이 난 것이다. 

그는 해방의 혼란과 전쟁의 참화는 겪지 않았지만 모질게 가난했던 시절 태어나고 자랐다. 모두가 가난했기에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자란 것이 뒤늦게 억울할 이유는 없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공부도 일도 치열하게 했다. 빤한 수입에 식구는 많아 스스로 치열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정글의 생리를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형과 동생들을 위해 토목과 중장비 기술을 배웠다. 남들이 공부할 때 취업 전선에 내몰렸지만 단 한 번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악착스레 야간대학을 마쳤고, 자신의 도움을 받은 형과 동생은 보다 나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보상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10월 유신, 100억달러 수출, 1000달러 국민소득이 달성되면 ‘멋진 신세계’가 도래할 것이란 희망을 안고 중동행 비행기에 올랐다. 살인적 더위와 뜨거운 모랫바람, 지독한 향수병과 싸우며 하루 12시간씩 꼬박 일했고, 그 과실은 고스란히 영광스런 조국에 바쳤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도 가득하다.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겪으며 그의 믿음은 조금씩 금이 갔다. “열심히 일한 내가 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돼야 하나.” 처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술이 있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정은 이전 같지 않았다. 일은 계속하지만 수입은 들쭉날쭉했다. 그나마 그 일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공부를 덜 마친 자식이 있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가진 것은 집 한 채와 얼마나 받을지 모르는 국민연금 하나뿐이다. 평균수명도 길어져 앞으로 ‘100살 시대’가 된다는 보도가 희망적이기도 하고, 불안감을 더 키우는 요인이기도 하다. 노후가 걱정되지만 사실 무방비 상태다.

그런 그가 감사원장이 될 뻔했던 ‘정동기 씨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대검차장검사 출신이 ‘월급 1억원’짜리는 아니지 않으냐는 것이다. 게다가 ‘전관예우’ 관행이라 억울하다는 당사자의 변명에는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정작 억울한 사람은 누구인데…. 또 전관예우라는 말이 대명천지에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하긴 입만 열만 소수 약자의 권리를 외치는 ‘존경하는 대법관님’도 22개월간 20억원을 전관예우로 벌었는데…, 그의 골난 소리는 끝이 없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군대를 다녀오고, 달러를 벌어왔고, 세금도 한푼 에누리 없이 냈는데 국가는 해준 게 뭔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나라가 뭘 해줄 것이라고 바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웬만한 일은 속으로 삭이며 살아왔지만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박탈감이 자꾸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느닷없이 “MB 임기가 얼마나 남았지”라고 물었다. 물론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닐 게다. ‘정동기 씨 사건’은 그렇게 착한 국민들의 속을 헤집어놓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정 씨의 감사원장 임명에 난색을 표한 여당 대표에 잔뜩 골이 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민들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러니 임기가 얼마 남았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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