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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유령주거지 고시원, 양지로 끌어냈죠”
‘고시원 박사’ 최병진 관악구 도시관리국 과장
전국 첫 건축허가 지침 합법화 이끌어

사회적 약자의 주거행복권 회복 보람



고시촌의 대명사, 신림동이 속해 있는 관악구에서 ‘나홀로 가구’의 주거행복권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다. ‘고시원 박사’로 통하는 최병진(56ㆍ사진) 관악구 도시관리국 건축과장이 그 주인공. 그는 지난 40년 동안 실재(實在)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주거시설’, 고시원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주역이다.

최 과장은 “1998년 발령받아 관악구에 와 보니 신림동 일대를 중심으로 300동 이상의 고시원이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모두 불법시설물이었다”면서 “수요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무조건 제한하기보다는 법적장치를 둬, 양지로 끌어내고자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건축과 직원들과 일일이 발품을 팔며, 관내 통계자료부터 만들었다. 이를 들고 관계부처를 돌며 실무자들에게 극소형주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2000년 12월 관악구 독자적으로 ‘속칭 고시원’의 건축허가 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서울은 물론 전국 최초였다. 이 지침이 2009년 고시원 합법화(‘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의 시발점이 된 것. 현재 관악구에 등록된 고시원만 913동에 달한다.

최근에는 차세대 소형주택으로 각광받고 있는 ‘도시형생활주택’ 공급ㆍ확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도시형생활주택 활성화’ 방안을 담은 논문을 써, 서울특별시정연구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토록 소형주택 보급에 매달리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800만명(관악구 추정)에 이르는 ‘도시유랑민’들의 주거권 보장 때문. 이들은 반지하방, 무허가 옥탑방, 쪽방 등에 거주하는 사회적 약자층이 대부분이다. 그는 “재건축ㆍ재개발을 하면 집을 보유한 원주민 정착률도 15%밖에 안 되는데 하물며 세입자는 어디가겠냐”며 “이들의 주거행복권을 찾아주는 것은 직업적 소명이자,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할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핵(小核) 가구’ 증가도 소형주택의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1인가구는 403만 9000가구로 전체의 23%에 이른다. 수도권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절반 수준인 49%가 1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에 대한 열정만큼 학구열도 대단하다. 주경야독으로 연세대에서 도시공학 석ㆍ박사 학위를 차례로 땄다. 이후에도 서울대 도시환경 최고전문과 과정을 이수하는 등 학업과 업무를 병행 중이다.

이 같은 전문성을 발판으로 최 과장은 숙명여대, 연세대 객원교수로 활동 중인 등 국내 소형주택 분야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행정업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법적, 정서적, 학문적 공감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특히 업무 전문성은 행정효율성 및 추진력을 위해 공무원이 당연히 지녀야 할 덕목이 됐다”고 말했다. 

김민현 기자/ ki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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