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거는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쩡판즈(47, Zeng Fanzhi)가 발굴한 신예. 지난해 베이징 아트미아(ARTMIA)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과, 이번 한국에서의 개인전도 쩡판즈의 주선 아래 성사됐다. 쩡판즈는 “우연한 기회에 송이거의 작품을 접했는데 매우 놀라왔다. 대부분의 중국 작가들의 작업이 부호화되고, 반복적인데 반해 송이거의 그림은 생활에 대한 차분한 이해가 무척 풍부하게 담겨 신선했다”고 평했다.
당대 잘 나가는 스타작가가 주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송이거의 작품은 독특하면서도 탄탄하다. ‘회화의 맛’을 한껏 전해준다. 물기를 촉촉히 머금은 그의 간결한 그림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쩡판즈와 송이거 |
“얼마 전 차를 몰고 어린 시절 자랐던 하얼빈을 찾은 적이 있어요. 엄청 크게 여겨졌던 길들이 차가 진입하지도 못할 정도로 비좁더라고요.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그림에 옮겼죠. 이런 느낌들이 제 작품의 근원입니다.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들, 즉 학교 회랑이며 대중 목욕탕, 침실 등은 이처럼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특히 그는 욕조와 욕실를 많이 그리는데 인간이 자신을 감쌌던 옷을 모두 벗고, 몸을 씻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란다.
송이거는 무엇보다 일상의 작은 편린을 관찰하길 즐긴다. 인간의 감정이나 서로의 관계, 낡은 주변 사물을 살피고, 이해하는 데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 같은 세대 중국 작가들이 시각적인 화려함에 집중하거나 만화 같은 스타일에 몰두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겪은 감정에 뿌리를 둔다.
사진은 커다란 선인장에 어린 소년을 대비시킨 송이거의 ‘Helplessness 6’(2010). 소년은 작가 자신을 은유하기도 한다. 캔버스에 유채. 147x190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ARTMIA |
Helplessness5(2010) |
송이거가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처럼, 관객들 또한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순간으로 달려가는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닫혀 있던 우리의 생각과 기억, 꿈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다.
“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해요. 아, 쩡판즈 작품도 좋아하고요. 제 마음을 움직인 작가는 이들 두 작가예요. 두 작가 때문에 제가 그림을 그리게 됐고, 그리고 있어요”. 그러나 송이거의 그림은 베이컨의 그림처럼 그로테스크하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요하고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말없음은 오히려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
Platonic Honeymoon(2010) |
<사진은 커다란 선인장에 어린 소년을 대비시킨 송이거의 ‘Helplessness 6’(2010). 소년은 작가 자신을 은유하기도 한다. 캔버스에 유채. 147x190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ARTMIA>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