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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MB정부 금융 소방수될까
금융위원장 취임에 시장 반색…가계부채 해소·금융사 지배구조개선 등 속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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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붙는 관치란 용어는 어둡지 않다. 떳떳하다. 본인은 물론 시장에서도 그렇다. 그 역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하니 부끄럽지 않다”며 당당하다.

그가 사석에서 말한 ‘최동원론’은 의미심장하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역대 프로야구 선수 중 최동원을 최고로 친다고 들었다. 팀이 필요하면 컨디션 상관없이 등판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공무원도 인기와 경력 관리에 연연하기보다 필요할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관료생활은 줄곧 그래 왔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반을 진두지휘한 소방수였다.

5ㆍ8 부동산 특별대책반장(90년), 금융실명제 대책반장(93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 및 부동산 실명제 총괄반장(95년), 한보대책 1반장과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97년)이었고 4ㆍ3카드 대책, 신용불량자 대책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3개 정권을 거친 일이다. 놀랍게도 시장 역시 그의 복귀에 얼굴 찌푸리지 않는다. 그의 철학과 열정, 전문성을 익히 보아온 탓이다.

SD를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는 한 은행 CEO는 “직무 완수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의 ‘열정’을 봐왔고 그의 관치는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수단이었기에 반발할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또 다른 은행 CEO는 “실물경제의 이해도가 탁월해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관료”로 기억한다.

그는 정통 금융관료로서 다양한 경력이외에 아주 특별한 이력을 가졌다. KS(경기고,서울대)출신의 청년 김석동은 당시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20대 청년 재벌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표선수격이던 제세그룹이 무너진 이후 젊은 오너 기업에대한 은행의 갑작스런 대출금 회수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훌훌털고 공무원으로 선회했다. 그가 나이에 비해 행시 기수(23회)가 늦은 이유다. 당시의 발로 뛴 실물경제 경험은 지금도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집권 후반기 MB정부의 구원투수가 됐다. 김 위원장의 등장을 계기로 금융회사 경영지배구조개선법 제정작업이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재섭 기자/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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