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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증시 ‘할인’ 넘어 ‘왕따’된 근본 원인은 [홍길용의 화식열전]
경영효율 낮고 혁신 실종, 비전 부족
日 ‘흉내’낸 PBR 관리, 미봉책 그칠수
주주환원 낮을수록 지배주주에 유리
자사주 축적…주주이익 사유화 편법
성과급 등 직원보상도 감시 강화해야
경영성과·경영진 주주평가 정착 중요

코스피를 보고 있자면 가슴이 답답하다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간판기업들 가운데 굳이 주식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 별로 없다. 흑자는 내고 있다지만 투자자들의 가슴을 뛰게 할 혁신을 제시하는 곳도 적다. 미래 비전도 없는데 번 돈을 주주들에 나눠주는 데는 인색하다. 주주들의 불만은 커지는데 회사는 성과급으로 직원을 달래는 데에만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글로벌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다. 미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면 성장성이나 주주 환원이 우리 보다 나은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저평가(discount)라면 북한의 위협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경쟁사 대비 높게 평가할 만한 게 별로 없다면 ‘할인’이라기 보다는 ‘왕따(outcast)’에 가까울 수 있다. 이유가 뭘까? 상속세나 법인세 등 규제 때문일까? 상당한 이유는 되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과연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계 시가총액 1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삼성전자와 비슷하지만 경영효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효율은 낮고 혁신은 실종…비전 없는 경영

주가가 오르는 원리는 간단하다.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으면 된다. 주식을 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주가상승과 배당이다. 주가 상승은 미래가치에 비례한다. 앞으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날 확률이 높으면 미래가치가 커진다. 매출이 늘어나려면 제품 경쟁력이 있어야하고 이익률이 커지려면 시장지배력과 경영효율이 높아야 한다. 제품 경쟁력은 혁신의, 경영 효율은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결과다. 이 둘을 아우르는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역량이다. CEO에게 중요한 것은 지분율이 아니다. 선장이 꼭 선주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집단은 모두 지배주주 일가가 CEO를 맡고 있다. 간판 대기업집단을 창업한 지난 총수들 상당수가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뤄냈다. 지금의 총수 CEO 가운데 투자자나 주주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가 얼마나 될까? 증시에서 투자의 심박수는 가치 수준으로 나타난다. 주요국에서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과 비교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우리 기업은 거의 전무하다. 우리 시장과 금융시스템의 상대적 열세 탓일까? 그렇다면 우리 간판기업들이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면 어떨까?

아마 지금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왜 일까? 일단 대한민국과 원화 시장이라는 단점이 사라진다. 법인과 지배주주의 국적이 모두 미국으로 바뀌면 대한민국의 세제와 규제에서도 벗어난다. 하지만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주주들의 눈높이가 우리 보다 훨씬 높다. 특히 미국 증시는 기관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크다. 이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지금보다 보다 더 강력한 비전과 혁신, 더 많은 주주 환원을 제시해야 한다.

▶일본 증시 부활의 핵심은…변화에 대한 각성

오랜 기간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일본 증시가 상승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정부의 지속적인 경기부양과 중국 경제의 쇠퇴, 그리고 주주 중심의 경영 강화다. 전세계가 다 초 저금리일 때는 일본의 경기부양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이 긴축하는데도 초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그 효과가 나타났다. 일본 경제의 침체는 중국 경제의 부상과 교차했다.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일본 산업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주행동주의를 앞세운 글로벌 자본의 계속된 공세에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각성을 시작했다.

우리는 일본의 정확히 반대다.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우리 경제를 살린 게 중국 특수다. 중국 덕분에 매출을 늘리고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미중 갈등과 중국의 경제난으로 우리 기업들의 관련 매출이 줄고 효율도 낮아지고 있다. 한때 세계 1위에 올랐던 우리 기업의 제품들도 왕좌에서 밀려나고 있다. 자산시장의 부실 우려는 크고 가계부채 부담으로 내수 경기가 부진한데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정도 긴축이다. 주주행동주의 공세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기업도 정부도 이를 경영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을 흉내내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기업들을 특별관리(?)할 방침이다. PBR 1배 미만이란 뜻은 일반적으로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회사의 유무형 자산에 부실 또는 거품이 많다는 뜻이다. 정상기업이라면 전자에 가깝다. 주주 환원을 많이 하면 주가를 높이고 자본은 줄여 PBR 값이 오른다. 세금이 붙는 배당보다 비과세인 시세차익을 높이는 자사주매입의 효율이 높다. 상장사의 40%가 넘게 PBR 1배를 밑돌 정도면 개별 기업을 넘어 시장 체질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지배를 위해 주식을 팔 것도 아닌 지배주주가 굳이 주가 상승을 이뤄낼 동기는 적다.

*미국 보다 중국증시에 더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증시. 미국의 중국 견제 수혜를 누리는 일본 증시.

▶주주는 홀대, 직원은 우대…균형 잃은 성과 보상

주가 상승은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중요하다. 성과가 부진하거나 주주 환원이 부족하면 주주들은 경영진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즉 주주들의 의결권이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경영진은 주가에 민감해진다. 경영권이 안정적이라면 굳이 주가에 신경을 쓸 이유가 적다. 투자를 하고도 남은 누적된 이익을 주주에 돌려주지 않고 회사가 계속 보유하면 경영진이 통제권을 갖는다. 자사주를 매입해도 소각하지 않으면 경영진 임면권을 가진 지배주주는 회사 돈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개매수나 주총 표 대결 등을 통해 경영권이 바뀌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시기에 무더기로 주총을 열거나, 전자투표를 허용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는 제약됐다. 전자 주총이 보편화되면서 의결권 행사 환경은 개선됐지만, 무더기 주총으로 안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는 여전히 어렵다. 해봐야 결과가 뻔한 주총이라면 주주가 무섭지 않을 것이다. 주주가 무섭지 않은데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주 환원을 늘릴 이유는 적다. 주가가 높아지면 자칫 경영권 승계 비용만 불어날 수 있다.

주주가 무섭지 않으면 경영진 입장에서 가장 경계할 대상은 직원이다. 노동법 상 노동조합은 경영진에 맞설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노조를 다독이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보상이다. 주주 환원에는 인색한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성과급과 희망퇴직금 등으로 인해 판매관리비 비용이 글로벌 경쟁사 대비 커진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평할 때가 아니라 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자본시장이 외면 받는지 근본 원인을 하나하나 따질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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