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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와 새가 완성했다는 신비의 법당…사시사철 매력적인 내소사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㉞ 전북 부안군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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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대웅보전의 법당 내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거북이 털과 토끼의 뿔’이라는 뜻의 귀모토각(龜毛兎角)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사람들이 관념에 얽매여 실재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불교경전 능가경(楞伽經)에 등장하는 핵심 구절 중 하나다. 원효대사가 중시한 능가경은 석가모니가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을 상대로 설법한 내용으로, 미혹에 오염된 중생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대상에 집착하나 분별심을 갖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을 본 것’(자심현량, 自心現量)일 뿐이라는 유심(唯心)사상과 다양한 수행론을 기록하고 있다.

전북 부안에도 능가산(楞伽山)이 있다. 변산반도 내륙을 책임지고 있는 의상봉(508m)을 최고봉으로 하는 ‘변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변산 남쪽 곰소항을 바라보고 관음봉(424m), 세봉(402m)이 병풍처럼 뒤를 받치며 북쪽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곳에 내소사가 들어앉았다.(혹자는 관음봉만 콕 집어서 능가산이라고도 한다) 봉우리에 둘러싸인 내소사는 전나무숲길이 좋고, 가을엔 단풍이 멋있고,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다워 변산반도 여행길에 몇 번을 찾았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전나무 숲길과 새끼줄에 오색천이 매어있는 오래된 서낭당 당산나무뿐이다.

한반도에 들어온 불교가 토속화되면서 고유의 민간신앙을 포용하고 결합했고, 한국불교 특유의 요소들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사찰 안에 있는 ‘삼성각’이란 건물이다. 삼성은 (북두)칠성과 산신(산신령), 독성(혼자 깨달은 성자)을 일컫는다. 토속신앙과 결합한 다른 사례는 조상의 수목(樹木) 숭배사상을 적극 수용한 사찰 내 당산나무와 당산제일 것이다. 영동 영국사의 1000년된 은행나무 당산제나,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의 ‘오래된 할아버지 갈참나무’가 대표적이다.

내소사에는 일주문 바로 앞에 수령 700여 년의 할아버지 느티나무와 본당 앞마당에 1000여년 된 할머니 느티나무 등 커플나무가 있다. 이곳에서도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과 사찰이 공동으로 석포리 당산제를 열어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한다고 한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전라북도 부안군 능가산 내소사(來蘇寺)를 초여름에 다시 다녀왔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내소사
내소사 일주문

내소사의 원래 이름은 ‘제변산 소래사’(題邊山 蘇來寺)로 633년 백제의 혜구(惠丘)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창건 당시에는 대(大)소래사와 소(小)소래사가 있었는데, 현재의 내소사는 소소래사다.

예전에는 선계사(仙谿寺), 실상사(實相寺), 청림사(靑林寺)와 함께 변산의 4대 명찰로 꼽혔으나 다른 절들은 전란을 거치며 모두 불타 없어지고 내소사만 남아 있다.

‘소생한다’는 의미의 소래사가 글자의 순서만 바뀌어 언제, 어떤 이유로 내소사가 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나당연합 때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 582~667)이 백제를 공략하고자 서해에 상륙(650년)했고 이 절을 찾아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와전된 듯하다. 1633년(인조 11) 청민(靑旻)선사가 대웅전 등을 중건하였고 근래 들어 일주문과 천왕문을 짓고 대웅보전을 중수하고 설선당, 봉래루를 복원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사찰 앞 상가들을 지나면 끝자락에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라고 쓰인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 앞에는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금줄을 두르고 있고 일주문에 들어서면 산새소리가 퍼지고 맑은 바람에 향기를 내뿜는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일주문 앞 할아버지 당산나무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 내소사의 자랑거리다.

600여m 구간에 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다. 내소사 전나무숲은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 경기 포천의 광릉(세조의 능) 전나무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솔바람 소리에 전나무 사이로 내리는 비(松風檜雨), 4월의 신록(四月新綠), 겨울의 눈꽃(冬期白花)을 전나무 숲 3경(檜林三景)으로 표현할 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이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 치유와 힐링, 명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포장 흙길의 부드러움과 숲의 울창함에 홀린 듯 걷다 보면 조그만 연꽃 방죽에서 맹꽁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길게 늘어뜨린 단풍나무가 길을 막는 듯하면 어느새 천왕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을 지나면 기상이 넘치는 능가산 정상에 펼쳐진 운무와 그 안에 포근히 자리한 내소사 절경이 펼쳐진다. 봉래루(蓬萊褸) 앞 할머니 당산나무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과 설선당의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누각인 봉래루(蓬來樓)는 기둥들의 높낮이가 다른 것이 흥미로운데 1414년 건립되었으나 화재로 소실 다시 중건하여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누각 봉래루
설선당. 뒤에는 구름에 덮힌 관음봉

인조 때 승려들의 수학 장소였다가 현재는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ㅁ자’형 설선당은 지체 높은 사대부집 안채를 보는 듯 규모가 당당하다. 내부로 들어가니 평면의 높낮이를 다양하게 하여 공간 효율을 극대화한 조형 구성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2023년 국보로 승격된 동종은 1222년 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 있던 걸 발굴한 뒤 이 절로 옮겼다고 한다.

또 다른 내소사 보물인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고자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보질 못했다.

내소사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 보물로 지정돼 있다.
천왕문

조선 중기 건축물인 대웅보전은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작품도 빼어나다. 그 외에도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과 3층석탑이 있다.

설선당에서 30여분 걸어 올라가면 관음봉 중턱에 닿는데, 여기에 관음전이 있다. 여기서 내소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곰소만 앞바다 풍광도 일품이다. 그야말로 명당자리다. 대웅보전 단청작업을 하다 날아간 새(觀音鳥)가 앉은 곳이라고도 하고 대웅보전의 ‘백의관음보살’의 눈길이 향한 곳이라고도 한다.

설선당 앞에서 올려다보는 관음전 풍광도 아름답다. 내소사는 사계절이 모두 매력적이다. 봄에는 매화, 산수유, 벚꽃, 수선화 목련 등이 화사하게 반기고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설경이 장관이다. 봄가을에 피는 춘추 벚꽃도 한몫 한다.

설화가 깃든 보물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의 천장

조선 인조 11년에 건축된 대웅보전은 약간의 배흘림기둥, 그리고 한국적인 멋으로 유명한 연꽃으로 조각한 세밀한 꽃창살로 유명하다. 색깔을 덧씌우지 않고 옛것 그대로 두어 그즈넉함과 소박미가 더한다. 화려하고 날렵한 대웅보전 팔작지붕의 추녀 곡선은 뒷산과 조화를 이뤄 당당하게 느껴진다. 법당 내부 천장에 가득한 꽃무늬 단청과 연꽃봉오리들은 법당 안을 화사하게 하고 천장 대들보에는 10종의 악기를 연주하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법당의 불단 좁다란 뒷면에는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백의관음보살상(白衣觀音菩薩像)이 그려져 있는데 관음보살의 눈을 보고 옆으로 걸어가면 눈이 따라온다고 하며 소원을 빌면 하나는 들어준다고 일러준다. 이 그림은 강진 무위사(無爲寺) 극락보전 후불벽화인 보물로 지정된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에 견줄 만한 수작이라고 한다.

대웅보전 뒷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보살상

내소사 대웅보전 중건 설화가 전해온다. 호랑이가 변신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목수로 건물을 세우고, 법당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변신인 새가 그렸다고 하는 내용이다.

대웅보전 중건 설화

조선 인조 때 내소사의 노승이 계곡에 나가 대웅전 지을 목수를 기다리는데 호랑이가 나타나자 노승은 호랑이에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조금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며칠 후 목수가 절에 도착했다. 그는 묵묵히 목침만 만들었다, 사미승(어린 남자 승려)은 목수에게 절이 언제 완성되는지 물어도 말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사미는 얄미운 마음에 목수가 만들어 놓은 목침 하나를 몰래 숨겼다. 비로소 목침을 다 완성한 날 목수가 목침을 세어보니 한 개가 부족했다. 절망한 목수는 노승에게 대웅전을 지을 수 없다고 했으나, 노승은 목수를 설득해 예정대로 대웅전을 완성토록 했다.

대웅전은 지어졌으나 천장에 포가 1개 빠진 상태였다. 노승은 화공을 불러 단청 작업을 시켰고 사미승에게 작업이 끝날 때까지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명했다.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사미승은 법당 안을 훔쳐봤는데 안에선 오색찬란한 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신기했던 사미승이 법당 안에 발을 들이자 불현듯 호랑이 울음소리가 나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 사미가 정신이 들어 보니 큰 호랑이는 죽어 있었고 노승이 그 옆에서 “‘대호선사여! 생사가 둘이 아닌데 선사는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는가. 선사가 세운 대웅보전은 길이 법연을 이으리라”라고 법문을 외고 있었다.

대웅보전은 지금도 천장에 한 개의 포가 모자란 채 있으며, 단청은 채색이 덜 된 곳이 남아있다.

지장암, 청련암…자연이 빚은 보물 변산반도
내소사의 부속 암자인 지장암

내소사 부속 암자로는 초입의 지장암(地藏庵)과 설선당에서 세봉 방향 산길 1.5㎞ 지점에 있는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 숲길에서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가면 지장암이 있다. 과거엔 은적암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은적암은 통일신라 고승 진표율사가 3년을 기도하여 지장보살을 만났던 곳이라 전해지며, 그 후 흔적만 남은 옛터에 1940년 해안선사가 복원하여 지장암이라고 하였다.

1950년 이곳에 서래선림(西來禪林)을 개설하여 호남지역 불교 중흥과 선풍(禪風)을 드높였다. 이곳에서 해안선사는 불자들과 함께 1960년 불교전등회(佛敎傳燈會)를 창립했고 이후 해안선사 직계 제자들이 다듬고 가꾸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장암 중심에는 서래선림이 자리하고 앞마당 한가운데엔 최근(2019년)에 건립한 해안선사(1901~1974) 심인탑명(心印塔銘)이 있다. 나한전과 요사채 등이 전부인 아담한 곳이지만 맑은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곳이다.

내소사 경내

내소사에서 뒤편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좌측의 관음전을 지나 약 1㎞, 1시간쯤 임도로 올라가면 푸른 대나무숲과 함께 남으로 탁 트인 해안이 보이는 아담한 청련암이 있다. 관음봉과 세봉 사이의 높은 곳이라 곰소만의 푸른 바다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겨울엔 설경이 빼어난 곳이라고 한다. 백제 성왕 31년에 창건됐고, 1984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해체 복원 중수하였다고 한다. 한때 송진우, 김성수, 여운영 등 독립지사가 일제의 피검을 피해 은거지 삼았고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가 영광에서 변산 성지인 봉래정사(원불교 4대 성지)를 오가던 중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자연이 빚은 보물 변산반도에는 빼어난 비경을 자랑하는 8경(변산 8경)이 있고 그 3경을 소사모종(蘇寺暮鐘)이라 하는데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와 울창한 전나무 숲의 경치를 묘사한 것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이 배 타고 술 마시다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변산 서쪽 끝 격포항 채석강에 저녁노을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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